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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한국 추리소설 레코드 석 장

by @블로그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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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코드 석 장 >

'레코드를 석 장 사자.'
내가 아내의 부정(不貞)을 탐지하게 된
것은 어느 꽃꽂이 강습소의 강사의 투서에
의해서였다. 아내 역시 꽃꽂이 강습소의
강사로, 근래 국민의 주택생활이
향상되면서부터 사계(斯界)가 각광을 받게
되어 거기서 맹활약중인 30대 초반의
여자인데, 이런 아내의 부정을 나에게
통지한 여자는 아내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는 꽃꽂이계의 중견이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꽃꽂이계에 독보적 존재로
군림해 오다가 미모에다 재기발랄한 아내의
출현으로 그 아성의 붕괴를 목전에 둔
그러나 그녀의 투서 동기가 어디에 있든
그런 것이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 이름을 널리 얻지 못한 작가지만
그런대로 아내와 함께 벌어서 먹고 사는
데는 큰 곤란을 느끼지 않는 온실 안의
활엽수였다. 그런데 그 온실 안에 갑자기
찬서리가 내리고 태풍이 몰아친 것이다.
활엽수의 싱싱하던 잎은 누렇게 멍이 들고,
때 아니게 한 잎 두 잎 낙엽이 되어 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에게 투서를 한 그
여자의 아성의 붕괴에 비교할 수 없는 내
전생의 붕괴였다. 전 인생이 붕괴되어 버린
폐허에 어찌 문학인들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아내의 간부(姦夫)가 하인수라는 것은
의외였다. 하인수는 나의 대학 후배로
것을 다 정리하고 대구에서 어떤 대학의
전임강사로 출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울의 어느 대학에도 강의가 있어 서울에
오는 일이 잦은데, 그때마다 내 집에
들르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있으면 내
집에 들르고 더러는 묵어 가는 일도 있어
나와 구정(舊情)이 돈독한 사이였다. 나이
스물 아홉, 훤칠한 키에 굴곡이 뚜렷한
서양풍의 미남자.
그가 간부인 것이 의외라고 했지만
생각해 보면 반드시 의외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꽃꽂이 일로
서울에서 활약할 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지방도시에 내려가는 일이
잦은데, 대구에도 강좌가 개설되어 있어 한
달에 15일과 16일, 이틀 동안을 거기
밀회의 계기가 된 모양이었다.
오전의 맑은 햇살이 아파트의 유리창으로
새어들어와 거실 안으로 눈이 부시도록
밝게 비쳤다.
팔짱을 끼고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먼
하늘에 풍선처럼 떠 있는 아내와 하인수의
얼굴을 창밖으로 멍하니 내다보고 있는데
아내가 주방에서 앞치마에 손을 씻으면서
나와 말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녀의 얼굴에는 오전의 햇살만치나 밝은
미소가 담겨져 있었다. 내 앞에서 탈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탈을 예전의 맨
얼굴같이 보이게 하려는 아내의 교활과
노력이 더욱 가증스러웠다. 아니 그것이
예전과 다름없는 맨얼굴인 줄 알고 얼마
것을 구축해 보려 했던 나는 또 얼마나
어리석은 얼간이였던가.
"음? 아냐."
나 역시 웃어 보이면서 그 탈을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이
붕괴되어 버린 그 폐허에 그녀에 대한
살의라는 작은 독초 하나가 움트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 역시 탈을 써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가 다시 물었다.
"오늘은 글 안 쓰세요?"
"글? 글쎄...... 나보다도 당신은 오늘
뭘 하우?"
"나가 봐야죠. 오늘도 강좌가 둘이나
있어요."
"......."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아내를 죽이려는 것은
보복이라기보다 얼간이가 된 나를 최소한도
그 얼간이에서 구하려는 노력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그것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자기붕괴의 심리적 부정>이었다.
이 심리적 부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내를 죽이고 그 범인이 하인수인 듯이
가장하여 그까지 교수대로 보낼 수
있으려면 진범인 내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철두철미하게 수사권 밖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는 나는 아내의
악덕(惡德)에 이끌리어 완전한 자기자멸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생태보다
더한 어릿광대가 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알리바이! 아내가 밤색 투피스로 옷을
갈아입고 다녀오마고 웃으면서 말하고 나간
다음에도 나는 계속 그것을 생각했다.
알라바이는 그 시간에 그 범행 장소에 있지
않았다는 부재증명(不在證明)인데 이것만
튼튼하면 설사 누가 의혹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할지라도 겁낼 것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수사당국이 아무리 두드려도
끄떡도 하지 않는 알리바이만 있으면
만사는 형통이었다.
좋은 요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밤낮을 두고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버스에 흔들리면서도 그 생각을
하고, 거리를 거닐면서도 그 생각을 하고,
아내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
흐르는 동안 아내는 역시 매일 15일과
16일에 대구를 다녀왔으니까 그때마다
그들이 밀애의 쾌락을 만끽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는 그런 것이 문제되지 않았다. 이제
고영숙이라는 여자는 나의 명목상의 아내일
뿐 실(實)에 있어서는 남의 여자이고 내
인생을 무너뜨린 장본인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음울하게 구름낀
가을날의 오후. 이날, 아내는 역시
외출중이어서 집에 없었는데 굉장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알리바이를
고안하랴, 원고를 쓰랴, 이래저래 피로하고
곤비한 머리를 좀 쉬어 볼 양으로 거실로
나와 우리 내외가 다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를 듣다가
퇴적이 쌓이고 쌓이다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불쑥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섬광.
이 섬광이 뇌리에서 벽력처럼 번쩍인
것은 젊은 데너가수 후릿스 반다리히의
발랄한 리리시즘에 취해 있으면서도 젊은
나이로 계단에서 떨어져 요절하고 마는
그의 비운과, 가곡 중의 방앗간집 사내가
삼각관계의 비련(悲戀) 끝에 자살하고 마는
비운, 이 두 비운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 두 비운과
나의 비운, 이런 비운의 사나이들의 분노를
일거에 일소해 버리려는 듯이 벼락친
강렬한 빛이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라는 가곡
중에 나오는 방앗간집 사내는 방앗간
주인의 딸을 연모하다가 겨우 한 번
포수에게 주인의 딸을 빼앗기고 실의 끝에
내(川)에 몸을 던져 자살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전곡(全曲)의 맨 마지막
장면인데, 나는 이때 이 곡을 들으면서 나
같으면 그렇게 자살하지 않고 배반한 주인
집 딸과 포수를 한꺼번에 죽여 없앴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곡 중의 세 사람과
<우리들> 세 사람의 시추에이션이 몹시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포수의 총을 몰래 훔쳐 <두 연놈>을 쏘아
죽이면......? 아니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되면 맨 먼저 혐의를 받게 되는
것이 나일 테니까. 혐의를 받지 않는
방법으로 그들을 죽여야 해!
이때였다. 그 멋지고 굉장한 생각이 힐끗
머리를 스쳐간 것은.
끝나 턴테이블 위에서 레코드가 회전을
멈추고 정지했는데도 스위치를 끌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엇에 홀린 듯이 재킷에
그려져 있는 물방앗간의 그림을 뚫어지게
들여다볼 뿐이었다.
이 생각의 골격은 극히 간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러한 것이었다.
'똑같이 생긴 레코드를 세 번에 나누어
구입한 다음 그 중 하나를 부서 없애버리고
처음부터 두 장만 구입한 것같이 보이게
하자.'
이 간단한 고안이 나의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성립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영민한 민완형사라도 이 알리바이
앞에 서면 꼼짝달싹을 하지 못할 것이다.
곡은 아무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아내가
사든 상관없었다. 요컨대 이 알리바이
공작(工作)의 근본골격은 같은 것을 세
번에 나누어 사고 그 중 하나를 파기해
버리는 데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굳이
다른 것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시추에이션이 우리들 세 사람의
시추에이션과 흡사아니까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를 석 장 사기로 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분노를 해소하는데도
더 도움이 될 것이 아니냐.'
며칠이 지났다.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갔다. 가서 시가지를 걷다가 레코드 가게로
들어가 LP판(版)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한 장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것을 인천까지 가서 산 것은 서울의 어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이 판 사왔어."
아내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가 물었다.
"무슨 곡이에요?"
아내에게 그것을 내밀면서 말했다.
"받아 봐.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야."
아내가 두 눈을 조금 크게 뜨고 그것을
받아들면서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집에
있는데 또 샀어요?"
"이건 테너가 베르나 그렌이야. 후릿스
운과리지의 후계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각광을 받고 있다는군."
그제서야 내가 같은 곡의 판을 또 사온
들여다보면서 반가운 소리로 말했다.
"어머 그래요? 나중에 천천히 잘
들어봐야지."
그리고 재킷에서 판을 꺼내어 앞뒤면에
적혀 있는 라벨의 글씨들을 읽는 것이었다.
그녀는 앞으로 며칠 동안 이 판을 몇
번이고 틀어볼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광(狂)이니까. 그때마다 레코드의 앞뒷면에
그녀의 지문이 묻을 것이다. 이것이 아내
살해와 나의 알리바이 성립에 있어서의
필수조건이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변변히
원고를 쓰지 못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판 석 장과 이 판의 구입 날짜,
그리고 아내를 대구로 데리고 내려간
치차(齒車)같이 조립하여 알리바이를
조성하려는 내 계획의 허점이 있지나
않은지 몇 번이고 다시 머리 속에서 점검해
보고 또 아내를 대구로 데리고 내려가서
살해할 장소를 머리 속에서 물색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썼다.
오전에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외출하여
서점을 돌거나 산보삼아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나의 버릇이지만, 이
며칠 사이에 나의 그런 일과에 다소의
변형이 있었다. 오전엔 서재에 틀어박혀
원고를 쓰는 척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점심때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선 일이 한두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다소의
변형에 아내가 의심을 품지는 않을 것이다.
전에도 그런 일이 전혀 없지는
적합한 장소는 대구의 검정동과 이양교
사이에 있는 천변(川邊)이었다. 이곳은
내가 어렸을 때 자주 천렵(川獵)을 나갔던
곳으로 해가 지면 인적이 끊기는 한적한
곳이었다. 여기서 아내의 시체가 발견되면
내 알리바이가 완벽하기 때문에 하인수에게
혐의가 갈 수밖에 없고 살해 일시가 그들이
늘 밀해해 온 때와 일치하기 때문에
알리바이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그가
범인으로 지목받을 것은 필지의 사실이
아니겠느냐.
나는 바람부는 천변에 누워 있는 아내의
시체와 교수대에 곶감처럼 매달려 숨진
하인수의 몰골을 노상에서 꿈꾸면서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르는 만족감에 전율했다.
그들의 말로가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것은
그러면 어떤 구실을 붙여 아내를 15일
하루 전에 대구로 데리고 내려갈 수
있을까.
9월 초순이었다. 이날도 오후에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대구에 내려갔다 와야
할까봐."
주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식기를
달그락거리고 있다가 아내가 물었다.
"왜요?"
"두어 달 전에 입원한 이규식 군이
아직도 퇴원을 못하고 있대."
"이 선생님요? 어머, 아직두요?"
이규식 군은 나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절친한 사이였다. 그 역시 처음에는 문학
실패하고 지금은 대구에서 대규모의
의류도매상을 하고 있었다.
"아까 거리에서 다른 동창생 하나를
만났는데, 심장마비의 예후(豫後)가 상당히
좋기는 하지만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나에게 아직 퇴원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하려 했는데 이렇게
만났으니 잘 됐다면서 그런 소리를
하니......."
이것은 물론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또 15일 하루 전, 즉 14일에 아내를 대구로
데리고 내려가 살해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기 위한 예비선(豫備線)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그 전에 미리 대구로
내려가서 하인수를 만나기 위한 복선이 될
수 있었다.
좌우간 그의 일용품을 손에 미리 넣어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시체발견
현장 부근에 떨어뜨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아내가 미간을 모으면서 말했다.
"그럼 내려가 보셔야죠. 내일
내려가시겠어요?"
부러 심란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나는
음, 하고 대답하고 쓰러지듯이 거실의
소파에 몸을 던졌다. 몹시 피곤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고속버스편으로
대구로 내려갔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예년과 다름없는
단조한 초가을의 풍경이 나에게는 아무
감흥도 주지 못했다.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그 가운데 군데군데 서 있는
보았다. 그러나 이번 하구(下邱)의 목적은
그런 허수아비로부터 최소한의
에고(ego:自我)를 회복하려는
안간힘이었다.
아내는 내가 대구에 내려가서 하인수를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규식과
하인수를 둘 다 만날 필요가 있었다.
병원으로 찾아가 이규식을 만나고 다시
하인수를 만난 것은 그날 오후
3시경이었다. 대구에 닿은 것이 정오 조금
전. 터미널에서 곧 대학으로 전화를 했더니
오후 3시경이면 시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인동에 있는 조그만 생맥주집. 거기서
둘이 생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연신 담배를
그의 눈에도 내가 전혀 내막을 알지 못하는
<얼빠진 남편>으로 보였겠지. 화제는
우리나라 문단의 현황과 학계의 근황 등
시시한 잡담이었다.
두어 시간 앉아 있는 동안 내가 화장실에
한 번 가고 그 역시 화장실에 한 번 갔다.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손수건을
꺼내어 손을 싸고 그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재떨이에서 두어 개 집어
손수건에 싼 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의 타액이 묻어 있는 꽁초에 내 지문이
묻게 되면 그런 넌센스가 없을 것이다.
그날 밤 중류급 호텔에 방을 잡아 놓고
검정동과 이양교 사이에 있는 천변으로
나가보았다. 이것은 말하자면 범행현장의
사전답사였다.
내(川) 너머로 지저동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고 내를 타고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귀밑머리를 간지럽게 흩날릴 뿐.......
이렇게 해서 나의 1박 2일의 여행이
끝났다.
정오 조금 지나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르니까 아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하고 현관 도어를 열어주면서
물었다.
"어머, 벌써 오세요? 이 선생님 용태가
좀 어때요?"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서면서 내가
말했다.
"심상치가 않아. 당신 나가려던 참이야?"
"네, 그거 큰일이로군요. 장병이라 난
2,3일 걸리실 줄 알았는데......."
자야겠어."
"그럼 나 다녀올게요."
"......."
욕조에 더운물을 틀고 몸을 담갔다.
긴장이 쌓인 탓인지 온몸이 나른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했다.
'매월 15일에 아내가 대구에 내려가는
것은 늘 정해져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서울의
꽃꽂이 관계 사람이나 대구의 꽃꽂이 관계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아내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15일날 대구에 내려간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은 그 전날, 즉 14일에 데리고 내려가
없애 버려야 한다.'
14일날 대구로 데리고 내려가서
없애버리고 이튿날, 즉 15일날 서울로
명확하게 해놓으면 나의 알리바이는
완전무결하게 성립될 것이다. 그녀가 나를
따라 대구로 내려간 것이 14일이지만
15일날 내려간 것같이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레코드판을 이용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13일날이 되었다. 맑은 날씨였다.
15일날의 하루 전, 즉 14일 아내를 대구로
데리고 내려가기 위해서는 오늘 공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토스트 두 조각과 우유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외출을 했다. 덕수궁의
벤치에 두어 시간 앉아 있다가 돌아와서
음울한 음성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이규식 군이 또 발작을 일으켰다는군.
지금 위험선을 헤매고 있는 모양이야."
"또요?"
"음, 내일 다시 한 번 내려가
보아야겠는데 당신 나하고 함께 가주지
않겠소? 당신이 내려갈 날짜는 모레지만
하루 앞당겨서 내일 나하고 함께
내려가자구."
"그러죠, 뭐. 당신하고 여행을 해보는
것도 여러 해 만이구요."
됐다! 마음으로는 이미 내 곁을 떠난 지
오래인 그녀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는
그런 소리를 할 수밖에 없겠지.
하루가 또 지나 14일이 왔다. 이날 나는
계획의 3단계로 들어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토스트 두 조각과
우유 한 컵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내에게 말했다.
"나 좀 나갔다 올게."
"책을 한 권 살 게 있어."
"얼른 다녀오세요. 1시나 2시까지는
터미널까지 나가야 하니까."
"알았어."
그 길로 곧장 청계천 3가에 있는 레코드
가게로 갔다. 단골집이었다. 서로 얼굴이
익은 여점원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한 장
싸줘. 베르나 그렌이 부른 것으로."
여점원이 예쁜 연분홍색 포장지로 그것을
싸주었다. 판을 받아들고 나서 말했다.
"요새 클래식 팬이 늘어서 장사가 괜찮을
거야. 빌어먹을 놈의 팝송, 그런
포풀러송은 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러나 이것은 이날 내가 이 가게에서 이
판을 사갔다는 것을 여점원의 머리에 박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이미 여행
준비를 다 끝내고 있었다. 새로 사온
레코드의 포장지에 그녀의 지문이 묻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것이 사후의 나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절대 필요조건이었다.
레코드를 화장대 앞에 앉아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이거 사왔어."
그녀가 받아들면서 말했다.
"이건 무슨 판이에요?"
"팝송이야."
그녀가 그것을 방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책을 사러 나가신다더니 팝송판은 왜
사오셨어요?"
새로 산 레코드판의 포장지에 그녀의
지문을 묻힐 필요가 있는 것은 14일날 밤,
즉 오늘 밤에 대구의 한적한 교외에서
시체가 될 아내지만 오늘 오전까지는
그녀가 서울에 생존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함이었다. 부러 팝송판이라고
한 것은 클래식광인 그녀의 관심을 딴 데로
돌려서 포장지를 찢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의 이 계획은 일초의 착오도
없이 적중되었다. 그녀가 포장지에 지문을
묻힌 다음 포장지를 뜯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것을 방바닥에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서울 터미널에서 오후 2시 반 대구행
버스를 탔다. 목격자가 나타나면 여기서
허점이 드러날 염려가 없지 않으므로
나와 나란히 앉아서도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묻지 않았다. 친구의 문병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부부동반의
여행임에는 틀림이 없으므로 그런 여행
기분을 내보려는 것인가 하고 속으로
짐작할 뿐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별 흥이 나지 않는 모양이군."
"늘 타본 라인이라놔서요."
"대구에 내려가서는 이군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이 검정동에 있으니까 그 근방에
여관을 잡자구."
"그러죠."
대구에 닿은 것은 오후 6시 반이었다.
검정동! 아내가 택시를 타자는 것을 내가
우겨서 시내버스를 탔다. 나중에 경찰이
택시회사를 뒤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병원으로 가보기로 하지."
"그래요."
아내를 현장으로 데리고 가는 버스는
때마침 러시아워라 여간 붐비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천장에 매달려 있는
손잡이를 잡고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이미 오색 색등이 요란한
시가지의 바깥풍경을 내다볼 뿐이었다.
아내가 나직이 말했다.
"어두운데 그만 색안경 벗으세요."
"아냐. 여행기분을 흠뻑 내야지."
"어린애같이......."
버스가 번화한 시가지를 벗어났다.
그러나 버스 안은 여전히 만원이었다.
곁에 서 있던 아내가 '여보' 하며 낯을
찌푸리며 내 팔을 잡았다. 현장이
여전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왜?"
하고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 곁에 웬
꾀죄죄한 젊은 남자가 서 있는데 그가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입구 쪽으로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치한.......
우리 두 사람은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녀 곁에 그녀의 남편이 서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만원버스에서 여자에게 허튼 수작을 거는
그 배짱은 대체 어떤 심보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조금도 질투를
느끼거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미
다른 남자의 손끝에서 관능의 촉각을
만끽한 여체! 나의 손끝에도 남아 있는 그
뿐이었다.
이양교 조금 못 미처 정류장에서 차가
멎으려 할 때 내가 말했다.
"여기서 잠깐 내리지."
"아니 검정동까지 가야 한다면서요?"
"여기서 잠깐 내렸다가 다음 버스로
가자구. 내가 어렸을 때 늘 천렵을 하던
곳이야."
아내는 별 이유 없이 내 뒤를 따라
내렸다. 여기는 시가지가 끊겨 주위가 여간
어둡지 않은 곳이었다.
"하인수 군을 나오랠까?"
"하 선생은 왜요?"
"좋지 않아. 저기 내(川)가 보이구.
소주나 한 병 사다가 함께 마시게."
"풍류로군요. 그러죠, 뭐."
전화 걸구 오라구."
"당신이 걸지 그러세요?"
"당신이 걸어. 내 말은 하지 말구.
놀라게."
"싫어요."
"싫어?"
그럴 테지. 잠시 후 아내에게 말했다.
"저리 가볼까?"
터덜터덜 걸어 뚝가의 모래밭에 가 섰다.
바람이 불었다. 주머니에서 몰래 흰 장갑을
꺼내어 끼었다. 한참만에 아내가 말했다.
"바람이 불어요. 그만 가요."
"......."
"네? 추워요."
내가 소리 낮추어 말했다.
"넌 조금 있다가 이 모래바닥에 시체가
내려오곤 하지 않았니. 하인수하고 여길
거닐어 본 적이 있는지도 모르지."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가 말했다.
"무슨 말슴이세요?"
휙 덤벼들어 아내의 목을 조였다. 아내의
몸이 내 품안에서 축 늘어진 것은 2분도 채
못 돼서였다. 그 아내의 시체를 손으로
모래를 깊숙이 파 거기 묻고 족적을 없앤
다음 담배꽁초 두 개를 그 근방에 떨어뜨려
놓았다.
나는 그날, 선글라스를 낀 채 막차로
다시 상경했다. 하루 대구에서 묵을 수도
있었으나 전번 일고 달라서 절대로 내
흔적을 대구에 남겨 놓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오늘 내가 대구에
내려왔다 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날 자정이 가까워서 서울에 도착했다.
부러 버스를 타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텅빈
아파트였다. 아내가 없는 아파트.
지금 아내는 대구의 이양교 천변에
시체가 되어 묻혀 있는 것이다. 거기는
밤이나 낮이나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니까
시체 발견 시간이 여러 날 후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점을 노려 될 수 있는 대로 깊이
파묻어 놓았던 것이다.
이튿날, 즉 16일, 혼자 토스트를
구워먹고 소파에 누워 두어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그 청계천에 있는 레코드가게로
갔다. 나는 얼굴이 익은 그 여점원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한 장
싸주오. 베르나 그렌이 부른 걸로."
"그거 어제 사가시지 않았어요?"
"사갔지. 사갔는데 우리 집 사람이 그만
흠집을 내고 말았어."
"아, 네. 그러죠."
여점원이 같은 포장지로 싸준 레코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 공작에
착수했다. 지금 사온 레코드에서 오늘 날짜
리시트를 뽑아 어제, 즉 14일에 산
레코드의 포장지 사이에 끼어넣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제 산 레코드를 오늘 산
것인 듯이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어제 산 레코드의 포장지에 아내의
지문이 묻어 있으니까 그녀가 집을 나간
것이 오늘인 듯이 보이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오늘 사온 레코드는 흔적도 없이
처분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싸들고 버스를 타고 여러 정거장을 가서
쓰레기 처리장에 내다 버렸다.
이 계획을 위해 산 레코드는 모두 석
장이었다. 즉 인천에 가서 산 아내가
지문을 묻혀 몇 번이나 들어본 A판과, 어제
청계천에서 산 아내가 역시 포장지에
지문을 묻힌 B판, 그리고 오늘 사다 처분해
버린 C판이 그것들이었다. C판을 처분해
버린 다음 나는 인천에서 사온 A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전축바늘로 북
흠집을 내놓았다.
그러나 경찰이 바보가 아니므로 나에게도
의심의 시선을 돌릴 것이 틀림없었다.
경찰이 찾아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면 나는 이렇게 말할 작정이었다.
"아내가 집을 나선 것은 여느 때와
서울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 또
이렇게 말할 작정이었다.
"그럼 이 레코드를 보십시오. 이건 내가
15일날, 청계천에 있는 단골가게에서 산
겁니다. 이 레코드의 포장지에 아내의
지문이 묻어 있으니 아내가 15일날
오전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후 나는 서울을
떠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아내를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여기서 경찰은 조금 망설일 것이다.
그러면 더 파고들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포장된 채 있는 판을 감정해 보면 알
것 아닙니까. 아내의 지문이 묻어 있나
없나. 그리고 이 판을 15일날 오전에 내가
보세요. 단골가게니까 여점원이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보세요, 여기 이렇게
15일자의 리시트가 끼어 있지 않아요."
정말 15일에 산 레코드는 처분해
버렸으니까 이 허언(虛言)이 들통날 염려는
전혀 없었다. 그러면 경찰은 그 B판을
받아들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가서
감정을 하고, 청계천에 있는 가게에 가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겠지. 이때 레코드
가게의 여점원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네, 맞아요. 15일날 오전에 와서 이
판을 사가셨어요. 그 전날에도 같은 판을
사가셨는데 그만 부인이 흠집을 내버리고
말았다나요. 틀림없이 15일날 오전에 와서
이 판을 사가셨습니다."
여기서 경찰은 벽에 부딪히겠지만
쉽게 손을 들고 말 리가 없다. 경찰은
이렇게 말할는지도 알 수 없다.
"당신은 15일날 산 판의 포장지에 부인의
지문이 묻어 있다고 하지만 이건 사실은
14일날 산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부인을
대구로 데리고 내려가서 살해하고 그날
바로 서울로 돌아와서 이 아파트에서 밤을
샌 다음 이튿날 다시 그 가게에 가서 같은
판을 산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내 말이
틀렸습니까?"
그러나 이 말은 예상하고 있었던
말이므로, 이때 인천에 가서 사온 판을
내밀면서 말하려는 것이다.
"이게 14일날 산 판이라니까요. 이
판에도 아내의 지문이 묻어 있을 겁니다.
그날 (14일) 아내가 여러 번 듣다가 이렇게
가지고 가서 감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내의 지문이 묻어 있나 안 묻어 있나."
여기서 경찰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마지막 벽에 부딪치고 말지 않겠는가.

대구의 꽃꽂이 강습소에서 연락이 온
것은 17일날 오전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15일날 오후에 대구에 내려오는 것이
상례인데, 16일이 지나고 17일이 되어도
소식이 없어 장거리전화로 묻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했다.
"뭐라구요? 우리 집 사람은 15일날
대구로 내려갔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그날 오후에 나는 경찰에 실종계를 냈다.
그런데 그 이튿날, 18일날 오전에 아내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것을 파헤치고 놀다가 시체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18일의 석간을
보고 알았다.
가슴을 조이며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까, 19일날 정오경에 형사 두
사람이 찾아왔다. 대구 관할서의
수사요원으로 한 사람은 젊고, 다른 한
사람은 오십이 넘어보이는 사람이었다.
나이 들어보이는 사람이 거실의
응접세트에 앉아 물었다.
"부인이 집을 나서신 게 언제입니까?"
침착하게 내가 대답했다.
"15일날 오후 1시경입니다. 늘 그때
대구로 내려가지요."
젊은 형사가 물었다.
"부인 곁에 하인수라는 선생의 후배가
딱 잡아뗐다.
"뭐라구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젊은 형사는 단호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능청 떨지 말아요! 우린 그걸 하인수
씨의 약혼녀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번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내 안전에 캄캄한 섬광이 하나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닙니다. 전 전혀 모르고 있던
일입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알고 현장 부근에 그
사람의 타액이 묻어 있는 담배 꽁초를
떨어뜨려 놓은 모양이지만 그 사람은
13일부터 열흘 예정으로 정밀진단을 받기
위해 대구의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 수술도 받았다는군요. 배를 짼 사람이
어떻게 이양교까지 가서 부인의 목을 조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 사람의 약혼녀가
병원에서 간호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복병이었다. 또
하나의 캄캄한 섬광이 번쩍 안전을
스쳐갔다. 늙은 형사가 말했다.
"어떻습니까? 현장 근방에 하인수 씨의
타액이 묻어 있는 담배 꽁초를 떨어뜨려
놓은 것이 선생 아닙니까?"
내가 펄쩍 뛰면서 말했다.
"천만에요. 나는 13일 이후에 대구에
내려간 적이 없습니다. 내 생활권 안에서
밤낮으로 나를 목격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첫째, 관리실의 수위가
그렇구요."
어찌할 수 없었다.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늙은 형사가 조금 언성을 높여 말했다.
"13일?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부인이
살해된 것은 14일 밤이니까요."
그는 무엇을 가지고 살해일자가 14일
밤이라고 단정하는 것일까. 그 어조가 너무
단호해서 레코드를 내놓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용의주도하게 준비해 온
알리바이가 그만 이렇게 눈녹듯이 붕괴되고
말려는 것인가. 눈앞이 캄캄했다.
하인수가 13일날 입원을 했다니! 아니
그것보다도 수사진의 수중에 무엇인가 다른
재료가 있음이 거의 틀림없어 보였다.
섣불리 레코드를 내놓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성(人爲性)을
제시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지도 몰라
나이 든 형사가 조용히 말했다.
"오 선생, 선생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14일날 밤에 대구 시내에서 소매치기
하나가 붙잡혔습니다."
소매치기? 고개를 들었다.
그 소매치기의 호주머니에서 부인의
이름이 새겨진 지갑이 나왔어요.
'사랑하는 아내 고영숙의 33회 생일을
축하하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 그렇군! 그
치한! 그놈이 소매치기였군.
나는 두 눈을 감았다.
"그 소매치기가 말했습니다. 그때 그
여자의 곁에 그 여자의 남편이 서 있었다고
말이지요. 어떻습니까? 내 말
알아들으시겠습니까?"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 할말이 없었다.
캄캄한 시야 속에 내 인생의 모두를 건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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