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살인 >
나는 완전범죄를 했다.
1. 범행의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이나
사실을 남기지 않고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한 범죄.
2. 언뜻 보기에는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지만 논리적으로 완전히 가능한 범죄.
국어대사전은 완전범죄를 이렇게
풀이한다. 그렇다면 나의 범죄는 완전범죄
정도에 머무를 게 아니라 완벽범죄에
속할지도 모른다.
국어사전의 1항, 2항을 완벽하게
그 이상을 뛰어넘고 있다.
범행의 흔적이나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을
남기지 않는다든가,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한다는 따위는 애초부터 마음에 두지
않았다. 혹시 하는 불안감으로 꿈자리마저
사나울 그런 정도의 조심은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2중 3중의 안전
장치를 준비해 두었다.
범행 그 자체를 수출해 버린 것이다.
수출살인.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런 정도가
되겠지만 그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뜻
그대로 나는 살인을 하였고, 그 흔적을
수출해 버렸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편승한 우리
경제는 고도 성장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살길은 수출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러한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거나 소명의식을 가지고 수출살인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연간 186개국에
4850종의 품목이 수출되고 있는 터에 나의
'수출살인'이 하나 더 추가되어 품목이
4851종으로 늘어난들 무어 크게 대수랴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차피 시멘트 대신
돌을 수출하고 쓰레기까지 수출한다는
세상이 아닌가.
마리아 그랜드 호.
이름이 아름다운 중국 선적의 화물선을
보기 위해 나는 회사에 출장 신청을 냈다.
수출품의 선적 기일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두어야겠다는 절박한 심경 때문이기도
했다.
본 모델(BONE MODEL)이란 상품으로
수출되는 내 작품의 선적 장면을 내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범행 후 반드시 현장을
확인한다는 범죄 심리학의 주장이 나에게도
적용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후 조바심이 나서 현장을
기웃거리다가 체포되는 일반 잡범들과 나는
엄연히 구분되고 싶다.
내가 현장 확인을 강행한 것은 이제 곧
이역만리로 떠나 구천을 헤맬 영혼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겠다는 일종의 의식이었을
뿐 그 이상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건대 부산행 야간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은 사실이다.
사람의 일이란 게 혹시 또 모르는 법.
어딘가에 구멍이 생겨 차질이 빚어질지
신이 아닌 이상 누가 알겠는가. 나는 밤을
꼬박 새우며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여
확인 점검을 했다.
차창으로 어슴프레한 미명이 밀려올
즈음에야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시나리오는 완벽하다는 것을.
부두는 언제나처럼 활기가 넘쳐 흘렀다.
하역회사 털보 반장의 안내로 하역장에 막
당도했을 때 일만이천 톤급의 대형 화물선
<마리아 그랜드>호는 선적 작업을 거의
마무리짓고 있었다.
"쓸데없는 걸음을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마무리 작업만 남았잖습니까."
염두에 둔 듯 걱정을 아끼지 않았고 나는
의미있게 웃어 주었다. 과연 털보 반장의
말마따나 하역 작업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대형 윈치가 엄청난 힘을 자랑하며
부지런히 360도 회전을 하였고, 육중한
컨테이너를 가볍게 들어올려선 화물 탱크에
집어넣는 반복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털보 반장이 손짓을 했다. 드디어 우리
회사 차례였다. 나는 재빨리 컨테이너의
봉인을 살폈다. 봉인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 통관 때 붙인 그대로 얌전하게
붙어 있었다.
이상이 없다.
나는 저으기 안도하며 윈치에 매달려
올라가는 컨테이너와 작별을 나누었다.
나의 입가로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한나절이 지났을까.
하역장에 그득 쌓였던 컨테이너를 몽땅
삼킨 <마리아 그랜드>호는 이제 출항
준비로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을 토해내는
<마리아 그랜드>호의 장관은 자못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파일럿의 안내를 받으며 항구를 빠져나간
<마리아 그랜드>호가 까만 점이 되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감회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이제 모든 건 끝났다. 나의 범죄는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나는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느라 한참동안 어깨를
추스려야 했다.
내가 완전범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혜수의 약혼 소식을 들은 후부터였다.
혜수의 약혼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 주었고, 기나긴 겨울 밤 몇 날 며칠을
나는 하얗게 새워야 했다.
그 며칠 동안 혜수는 나의 상념 속에서
수없이 난도질 당했다. 죽였다간 살리고
살려내어선 또 죽였다. 그렇다고 나의
울분이 풀릴 리 만무한데도 그 무모한 반복
작업을 포기할 뜻이 내겐 조금도 없었고
결국 지쳐버린 건 나 자신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을 나는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오도카니 혼자서
떨어야 했다.
무수히 나뒹굴었고, 낙서가 쌓이면 쌓이는
만큼 반비레하여 나의 갈증은 도를
더해갔다.
제풀에 지친 나는 혜수를 수없이 포기해
보았고, 또 견딜 수 없는 외로움으로
열병을 앓아야만 했다.
"날 보내줘."
혜수는 내게 애원을 했었다.
"내가 널 좋아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좋아한다고 꼭 결혼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
네가 날 좋아하는 만큼 내가 잘 되라고
빌어줄 수 없니? 제발 부탁이야. 날
보내줘."
혜수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혜수는 일방적으로 혼자 떠들었다.
불우했던 갖가지 기억들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고, 이제 자기도 남보란 듯이
한번 살아 보겠다고. 혜수는 마치
신데렐라나 된 듯이 들떠 있었다. 그런
혜수가 잡은 상대는 시쳇말로 꽤 있는 집
아들이었다.
혜수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나갔다.
혜수를 설득하여 마음을 돌려보겠다던
나의 결심은 그렇게 깨어졌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 내가
해야 할 일은 혜수를 잊는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노력을 했다. 혜수를 잊기 위해
주위에서 놀랄 만큼 많은 맞선을 보았고,
주지육림 속을 뒹굴어도 보았다.
그런데 사람의 심사가 왜 그리 묘한 건지
잊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혜수가
혜수가 상큼 웃을 때의 그 보조개, 그
화사한 웃음, 그 풋풋한 살내음.
타는 듯한 갈증과 미칠 것 같은 번민
속에서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혜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영화 배우가 발설하여 한때 시중의
화제가 되었던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유행어는 나에겐 터무니없는
궤변이었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와
진배 없었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이번엔 혜수의
약혼자라는 사내를 만나 보기로 했다.
사나이 대 사나이로 이야기하면 뭔가
뜻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느낌일 뿐이었다.
나는 한마디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멋진 사내였다. 남자인 내가 반할 것
같은.
잘생긴 얼굴이며, 몸에 배인 체취며,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 같았다.
그리고 참을성도 꽤 있는 사내였다. 그는
내가 늘어놓는 푸념 같은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 주었다.
혜수와 나와의 관계, 우리가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군대 3년,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2년. 도합 12년간이나 사귀어 온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고,
사고무친인 혜수를 위해 내가 얼마나,
어떻게 도움을 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나는 구구절절이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나는
특별히 강조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엉뚱했다.
"그래서요?"
사내는 도리어 반문을 해 왔다.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 정도 설명했으면 말귀를
알아 들을 만할 텐데.
"그런 건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될 문제들
아닙니까?"
사내는 마치 국외자처럼 말했다.
"그 문제라면 제가 아무런 도움도 드릴
수 없겠군요. 혜수 씨와 직접 말씀해
보십시오. 저는 다음 주에 미국으로
떠납니다. 뉴욕 주립대학 병원에
교환교수로요. 그래서 그 결정권은 혜수
씨에게 드리겠습니다. 혜수 씨가 미국으로
생각입니다만 혜수 씨가 당신을 선택한다면
저는 두 분에게 축복을 보내드릴 뿐이죠.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사내는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마치 커다란 벽에 부닥친
느낌이었다. 사내가 그렇게 크게 보일 수
없었고, 반대로 나 자신은 그렇게 왜소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혜수를 사이에 놓고
그처럼 담담한 사내와는 달리 생사를 걸고
덤비는 내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결국 사내를 만나지 않느니보다 못한
결과가 되었다.
사내를 만난 후로 나는 더욱 심한 갈증을
느꼈고, 그 사내로 인해 내 마음 속에
나는 마음 속으로 칼을 갈기 시작했고
완전범죄를 결심했다.
혜수가 없이는, 그것도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 주고는 살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싫다고 부득부득 떠나는
여자와 정사를 할 생각 또한 없었다.
나는 살아 남아야 했다. 시골에 내가
책임져야 할 부모형제가 있을 뿐 아니라
내가 받았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만 받아내면 족하니까.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완전범죄를 해야만 했다.
내가 완전범죄를 구상하고 있을 때
혜수는 사내와의 결혼을 예정대로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 즈음에도 나는 타는 듯한 갈증을
갈등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나 혜수의 미국행이 확정된 순간
나의 살의도 굳어졌다.
사내는 벌써 미국으로 날아갔고 혜수는
넉 달 후에 뒤따라 가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기회를 포착하고 있던 나는 드디어
혜수를 깜쪽같이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혜수를 감금한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설득을 했다.
혜수는 코웃음을 쳤다. 처음엔 내가
장난을 치는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심상찮은 내 기색을 눈치챈 듯 이내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통사정을 하다 지친 나는 미국의
사내에게 보낼 편지를 강요했다.
마음이 괴롭다. 당분간 여행이나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연락 드리겠다. 이런
요지의 내용인데 혜수는 이것마저
거부했다.
무려 사흘 동안 우리는 씨름을 했다. 그
사흘간 나는 미쳐서 날뛰었다. 그리고 모든
걸 체념한 혜수는 마침내 편지를 썼다.
그러나 나와의 결합은 끝내 반대를 했다.
결국 나는 나의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고
말았다.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 났다. 끝없이
상류사회를 동경한 혜수와 사랑에 눈이
멀었던 나와의 인연은.
![](https://blog.kakaocdn.net/dn/k8e5k/btrJm8GDOQO/I9JL2B7sYQkhzOKPFNYIYK/img.jpg)
곤두세운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혜수의 실종을 눈치채거나 혜수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물론
당분간 혼자서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는 뜻의 편지가 미국을 비롯한 여러
지인들에게 배달되기도 했지만, 혜수가
피붙이 하나 없는 사고무친이라는 점이
나에겐 다행스러웠다.
그러는 사이에 두어 달이 지나갔다.
부산의 메인 포트를 출발한 화물선이
미국 LA까지 도착하는 데 15일에서 20일
가량 소요된다. 거기서 뉴욕까지
트로킹(Trucking)하거나 철도를
이용하더라도 일주일. 모두 한 달을 넘지
않는다. 또 제품에 하자가 있다면
바이어로부터 크레임이 걸려도 벌써 걸렸을
그러나 미국측의 반응은 조용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내쪽에서 미국으로
전화를 넣어 보았다. 그리고 넌지시 떠
보았다. 수출품의 품질을.
"액설런트!"
그쪽의 대답은 한마디로 오케이였다.
그렇다면 내가 수출한 본 모델(BONE
MODEL)은 벌써 실수요자의 손에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짐작컨대 혜수는 지금쯤 어느 병원의
연구실에 서 있거나 의과대학 강단에서
모델 노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혜수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진지하게 인체
해부학 강의를 듣고 있을 미국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라 나는 얼핏 웃고 말았다.
미국을 가지 못해 안달하던 혜수였는데
아닌가. 한편으론 그런 혜수가 딱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어쩔 텐가. 버스는 이미
정거장을 떠난 것을.
어쨌든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렇게 또 8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혜수를 떠나 보낸 지 근 일년여가 되는
셈이다.
이제 나는 혜수를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다.
가끔씩 나의 꿈자리를 어지럽히던 혜수도
최근엔 통 나타나지 않았다. 바쁜 업무가
날 더 이상 한가하게 내버려두지 않은 탓도
있었다.
나에게는 큼직한 행운들도 잇따랐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의료기구 수출회사가
3저호황의 특수한 붐을 타고 사세가 껑충
나는 영업부 계장에서 무역부 과장으로 한
계단 승진을 했다.
게다가 되는 년은 앉아도 요강 뚜껑에
앉는다고, 나에게 그럴싸한 규수감이
생겨서 요즘 데이트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나를 이쁘게 본 회사 중역의 소개로
맞선을 보았는데 나는 그녀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꿩 대신 닭이라는 기분으로
만나기 시작했는데 찬찬히 뜯어보니 그
아가씨야말로 꿩이었다. 더욱이 그녀의
집안 배경 역시 빠뜨릴 수 없었다.
세칭 있는 집이었다.
있는 집 아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혜수처럼 나도 있는 집 딸과 사귀게
되었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분주하면서도
보람있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석기라고 합니다."
사내가 내놓은 명함에서 경찰대학
지도실장 경장 김석기라는 고딕체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경찰? 불길한 예감이 선뜩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신지?"
응접실로 안내하여 녹차를 대접하면서
나는 다짜고짜 용건을 물었다.
"바쁘신 모양인데 죄송합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회사 분위기가 마음에
걸리는 듯 김석기는 한참 만에 입을
"경찰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끔씩 엉뚱한
질문들을 해댑니다. 아주 난처할 때가
많아요.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하는 물음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주 전문가도
아니고, 허허......."
"무슨...... 내용이신지?"
나는 저으기 안도했다. 상대가 경찰이라
켕기긴 했지만 수사경찰관이 아니라
학생들을 지도하는 경찰이라니 일단 마음은
놓였다.
"거 뭡니까? 사람 해골 있잖습니까?"
"해골요?"
나는 속이 뜨끔해졌다.
"거 왜, 인체 해부학 시간에 가르치는
인조뼈라 그러던가? 인체구조 말입니다."
"아! 본 모델 말씀이군요."
나는 재빨리 바로잡아 주었다.
"본 모델?"
"우리 말로 하면 인체골격이나
인체골격개라고 하죠. 저희들이 상품용어로
본 모델이라고 합니다."
"아하!"
김석기는 수긍이 가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본 모델이 필요하십니까?"
"아니, 몇 가지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
본 모델이라는 게 성분이 뭔가요?"
"특수 플라스틱과 석회질로 구성되어
있죠."
"그럼 진짜 사람 뼈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똑같습니다."
"네. 전문가가 보더라도 한눈에 식별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실물과 아주 흡사해요.
예를 들자면 뼈에도 신경이 있어요. 그
미세한 신경 구멍까지 똑같이 만들어
내니까요."
"허......정말 놀랍습니다. 우리 기술
수준이 거기까지 가 있다니......."
김석기는 감탄을 연발했다.
"정말 좋은 세상이죠. 과학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예요. 지금은 인조뼈를 일부분
이식수술하는 정도지만 좀더 두고
보십시오. 몸 속의 뼈를 아예 갈아치울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허어......."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멸종되었듯이 미래 사회에서는 다리불구나
있다 이런 얘깁니다."
"그러니까 인조뼈를 사람 몸 속에 이식할
수 있다는 얘깁니까?"
"물론이죠. 교통사고가 나면 뼈가
으스러지는 경우가 태반인데요, 그때는
인조뼈로 대체해야죠."
김석기는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현대 과학의 신기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들이 어릴 땐 모조뼈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실물을 놓고서 공부를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실물은
귀하겠죠?"
"그럼요. 우리 나라처럼 유교 사상이
뿌리박힌 데서 누가 죽은 송장인들 선뜻
아시겠지만 사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부검도 잘 못하게
한다잖습니까."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의사들은
실물을 더 좋아한다는 것 같던데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실물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머리를 끄덕이던 김석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 가지로 고마웠습니다."
"별 말씀을......."
나는 김석기를 사무실 문 앞까지
배웅했다,
자리에 돌아온 나는 머리 속을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김석기를 통해서도 특별한 느낌이나
낌새를 알아차리진 못했다. 그는
수사경찰도 아니었고 젊은 나이에 꽤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는 친구로구나 하는 느낌
외에 별다른 것은 없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편치
못했고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웬지 입맛이 썼다.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의 집을 뒤진 흔적이 보인
것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 달
내내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집안이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물건들이 조금씩 자리를 이동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누군가가 나
모르게 나의 집을 수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는 워래 결벽증이 있어서 남이 내
물건에 손 대는 건 딱 질색이었다. 내가
한번 옮긴 물건은 내가 손대기 전에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혜수도
나의 그 불문율만큼은 곧잘 지켰었다.
그런데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혹시
경찰이 냄새를 맡은 걸까? 생각하니
머리털이 곤두섰다.
나는 내 짐작이 틀리길 간절히 바라며
실험을 해보았다.
출근을 하기 전에 벽장이며, 세면실이며,
부엌문이며, 책상서랍이며, 문이란 문은
모두 그 틈새에 머리털을 붙여 놓았다.
나는 안도했다. 그런데 둘째날, 머리털은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다. 셋째날도
마찬가지였다. 틀림없이 가택 침입의
흔적이다.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떤 놈일가? 혹시 경찰일까?
흥신소에 부탁해서 어떤 놈인지 캐어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분실한 물건도 없는 터에 괜히 꼬투리를
잡힐 필요가 없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어쨌든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내 범행이 발각되었다면 방어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시나리오를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내가 혜수를 우리 집으로 유인한 것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나자는 구실을
남의 눈에 뜨인다거나 이상하게 보일
이유가 하등 없었다.
또 범행 장소로 우리 집을 택한 것은
우리 집이 서울 변두리에서도 좀 떨어진
야산 밑의 외딴 독립 가옥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허름하긴 하나 나에겐 궁전이나
진배없었고 이곳에선 내가 제일
어른이었다.
안채는 나 혼자서 사용하고 있고, 건너채
방 두 칸에는 두 쌍의 맞벌이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범행 당시에는 두 쌍의
신혼부부가 모두 여름 휴가를 떠나고
집에는 오직 나 혼자뿐이었었다.
범행 장소로 서울 시내에서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혜수의 목을 졸라 질식사시킨 다음
시체를 급속도로 부패시켰다.
이 화학약품은 나만이 알고 있는
비법인데 자세히 공개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농유산과 중크롬산 칼륨, 그리고 몇 가지
화학약품을 더 첨가하면 농크롬 유산이라는
화학약품이 되는데 피혁 회사에서 동물의
가죽과 살을 분리할 때 쓰는 가죽 용해용과
비슷한 약품이 된다.
어쨌든 나는 지난해 무더운 여름의
휴가를 밀폐된 목욕탕 안에서 온통 보내야
했다.
뼈를 알콜로 닦고, 씻어내고,
가공하느라고 전문가인 나도 꽤 많은 땀을
흘려야 했다. 그 당시에 나는 부산에서
일어났던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을 비웃으며
그 못난 친구는 지문을 칼로 마구 그어
놓으면 신원 확인이 안 될 줄 알았지만
겉지문 속에 속지문이 또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체포되었던 것이다.
허나 나의 경우는 다르다. 나야말로
완벽하다. 뼈만 가지고 어떻게 지문을
채취하며 신원을 확인할 것인가.
나는 분해한 뼈를 가방 속에 넣어 회사로
들고 가서 내가 숙직하는 날 밤에 간단하게
조립하여 통관 직전의 수출품들 속에 끼워
넣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난 것이다.
게다가 나는 더욱 완벽을 기하기 위해
혜수의 소지품이나 옷은 모두 불태웠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번 사건에서 음미할
부분은 혜수의 여권이었다.
혜수가 비자까지 받아 놓은 여권을 나는
어느 브로커에게 넘긴 것이다. 물론 나라는
인물은 드러내지 않은 채.
이 땅에는 미국에 가지 못해 안달하는
여자들이 혜수 말고도 수두룩한
모양이었다.
내가 여권을 넘긴 지 정확히 사흘 후에
혜수로 위장한 여자가 김포공항을 빠져
나갔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니까 엄밀히 얘기하자면 혜수는 아직
살아 있는 셈이다. 그리고 미국의 어느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대리인이지만. 그것은 출입국 관리소의
컴퓨터에도 기록되어 있다.
자, 이 정도면 나의 콘티는 완벽하지
않은가. 그런데 현재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또 무엇인가. 누군가가 냄새를
노출되었단 말인가.
며칠을 두고 점검해 보아도 나의 콘티는
완벽했다. 어디에도 허점은 없었다. 그런데
우리 집의 비밀 가택 수색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신경쇠약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나의 이런 신경쇠약을 제일 먼저
알아챈 건 그 아가씨였다. 그리고 걱정을
해주었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아가씨의
부모님들은 노총각이 혼자서 해먹는 밥이
얼마나 부실하겠느냐며 약혼을 서두르자며
약혼 날짜를 고르느라고 법석인
모양이었다.
나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이런 와중에 나에겐 골치거리가 또 하나
그것은 경찰대학의 김석기 경장이었다.
그 친구는 나를 만나고 간 후로 사흘이
멀다하고 전화질을 해대었다.
주제는 한결같이 해골이었다.
그 친구, 경찰대학의 지도실장이라면
학생들 지도하기도 바쁠 텐데 해골에 웬
관심이 그리 많은지 해골 박사가 되어 버린
듯했다.
그것도 처음 통화 때는 듣기 편하게 내가
가르쳐 준 용어로 본 모델이 어떻고 인체
골격이 뭐 어떻게 되고 해쌓더니 어느새
용어는 다 까먹고 해골, 해골 하며
노골적으로 해골을 뇌까리는 통에 이제 내
골이 아플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화를 거절할 명분도 없고 피하는 것도
정도였다.
그런 김석기로부터 또 전화가 걸려왔다.
"아, 장 과장님! 공장 견학을 좀 할 수
없을까요?"
나는 마지못해 그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김석기는
한떼의 경찰 대학생들을 몰고 견학을 온
것이다.
"허허...... 이번에 졸업하는
학생들입니다. 이제 곧 임관을 하면 일선
경찰서로 나갈 텐데 앞으로 범죄수사
실무를 맡을 때 도움이 될까 해서요.
허허......."
이렇게 말하고 김석기는 넉살좋게
웃었다.
한패거리의 불청객들을 견학시키느라
회사 간부들은 속도 모르고 뜻밖의
진객이라며 수선들을 떨었지만 나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견학이 끝날 때쯤 김석기가 나를 공장
한쪽의 으슥한 곳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대단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말을 꺼냈다.
"그 해골 말입니다. 의과 대학생들은
해골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모양이에요.
모두 진짜로 말입니다. 마침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어서 물어 봤죠. 그
출처를 말이에요."
김석기는 그 지긋지긋한 해골 이야기를
또 화제로 끄집어 내었다. 나는 담담하게
얘기를 했다.
"그래서요? 출처를 알아내셨어요?"
"네. 모두 선배들한테서 물려 받았다는
"예?"
순간 나는 뻥해서 바라보았다. 김석기는
아랑곳 없이 재빠르게 이야기했다.
"그럼 그 선배들은 어디서 해골을
얻었느냐? 모두들 그 위의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 출처를
거슬러 올라갔더니 옛날에는 해골이 흔한
시절이 있었던 겁니다. 바로 6.25 동란
직후죠."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무엇보다
해골에 대해 끈질긴 집념을 보이는
김석기가 무서워졌다.
"그때 가장 해골이 많이 나온 데가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동두천
근방이었어요. 참, 장 과장님 고향이
어디죠?"
"......동두천입니다."
"그래요, 동두천. 제가 또 다른 기록에서
알아 내었는데 동두천에서는 그 후에도
임자 없는 해골들이 많이 있었다고 해요.
그 당시 동두천에 근무했던 미군
군의관들이 귀국할 때 본 모델 하나씩은
들고 갔다고 하더군요. 참, 과장님은 군대
생활을 어디서 하셨죠?"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김석기가 대신 대답을 했다.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카츄사로
근무하셨더군요. 전 사실 장 과장님의
해골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놀랐거든요. 장
과장님도 아마 그때 선배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얘기를 들은 거겠죠?"
그렇게 말하고 김석기는 히죽 웃었다.
갔다.
강한 충격을 받은 나는 땅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모든 게
확연해졌다. 바로 저놈이다. 나의 집을
비밀리에 뒤진 놈이. 저놈은 모든 걸 알고
있다. 다만 증거가 없기 때문에 드러내고
덤비지 못한 것이다. 몰래 가택수색을 한
것도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고. 흥,
그렇다고 없는 증거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나는 아직까지 완전범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위를 하는데도 온몸의 맥이
풀리고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왔다.
나는 화단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담배를 붙여
멀리서 김석기가 손을 흔들었다.
학생들을 인솔하여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간신히 손을 반쯤 들어서 흔들어
주었다.
그 후로 나의 생활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신경쇠약은 날로 증세를 더해 갔고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실수를
연발하여 상사로부터 꾸중도 들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김석기였다.
그는 공장 견학을 한 날 이후로는 한 달
이상을 전화도 없었고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비밀 가택 수색도 중단되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그 점이 나를
불안 속으로 몰아 넣었다.
증거 지상 제일주의 아닌가. 황노파 사건도
그렇고 미모의 여비서 살인사건도 증거
때문에 미제 사건이 된 셈이 아닌가.
김석기, 그놈이 심리전을 쓰고 있는 거다.
내 피를 말려서 스스로 항복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김석기의 의도를 어렴풋이 알게 되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일단은 안심이다.
그런데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김석기가
어떻게 냄새를 맡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나로서는 그 점이 수수께끼였다. 이번엔
내쪽에서 김석기에게 궁금증을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
만났다기보다 김석기가 나를 찾아왔다고
표현함이 옳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약혼식을 올리는 서라벌
호텔의 로비에서였다.
그는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호텔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찔끔 오줌을 재릴 뻔했다.
약혼식을 하는 둥 마는 둥 치르고 나는
김석기를 이끌고 황황히 호텔을 빠져
나왔다. 김석기가 단둘이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가까운 여관방을
찾아 들어갔다.
방에 앉자마자 나는 따지듯 대들었다.
"도대체 뭡니까? 왜 남의 약혼식장까지
쫓아와서 분위기를 깨는 겁니까?"
보며 말을 했다.
"정말 완벽하게 일을 하셨더군요."
"무슨 소리요?"
"지혜수 씨 살인사건 말입니다."
나는 숨을 훅 삼켰다.
김석기는 노골적으로 본론을 끄집어
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몇 달 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후배로부터
커다란 소포뭉치가 하나 배달되어
왔습니다. 그 소포를 뜯어본 순간 나는
기겁을 했어요. 그 소포에 들어 있는 건
바로 사람의 해골이었어요. 나는 그 후배가
장난을 친 줄 알고 불같이 화를 냈죠.
그런데 미국의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시애틀의 주립대학에서
어느 날 자기네 교수의 연구실에서 본
모델을 보았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제품이었다는 겁니다. 타향에서 고향
까마귀를 봐도 반갑다는데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를 보자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자세히 살펴 보았대요.
그러다가 그것이 진짜 해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후배는 처음에는 무심코 넘겼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겁니다. 범죄의 냄새가 풍기기도 하고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지만 억울해서 구천을
떠돌고 있을 영혼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는 거죠. 생각다 못해 자기 돈으로
그 값을 치르고 마침 경찰에 몸담고 있는
달라는 겁니다."
"미친놈!"
나는 마음 속으로 그 후배를 저주했다.
"그런데 해골을 가지고 수사를 하자니
난감도 하고 분야도 달라서 할 수 없다고
그랬더니 그 후배가 막 야단을 치더군요.
선배님이 그러고도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가
되겠느냐구요. 혹시 억울하게 죽었을지도
모를 불쌍한 원혼을 생각하면 멀리 이국에
나와 있는 자신도 의분이 터질 판인데
경찰에 몸담고 있는 선배님이 그래서
되겠느냐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보니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해서 할 수 없이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김석기는 거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
나는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가지고 신원파악을 할 수 있는지 검사를
의뢰했는데 거기서 뜻밖에도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바로 장 과장 당신이 역설했던
과학의 힘이죠. 피해자의 뼈에서 2년 전에
당했던 교통사고의 흔적을 발견한 겁니다."
그 순간 나는 아차하고 땅을 치고
싶었다. 그 점만은 미처 계산에 넣지
못하였던 것이다.
"피해자의 해골에는 좌대퇴골 골절,
안면부 좌상으로 앞니 상하가 부러졌고,
두개골에 금이 갔던 흔적이 남아 있었어요.
피해자는 개방성정복수술을 하여 대퇴골에
심을 박았던 경력, 상하문치가 의치로
보충되었으며 두개골에 어렴풋한 흔적이
있음이 판명되었죠. 그래서 교통사고 전문
병원에 회람을 돌린 결과, 피해자를 치료한
엑스레이 필름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이름은
지혜수였습니다."
모든 것이 백일하게 드러났다. 나는 나의
궁금증, 나의 실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나의 마음은 편안해졌고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범인은 쉽게 지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장 과장, 당신이었어요."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오히려 유들유들하게 대들었다.
"그래요. 그 증거 때문에 당신을
체포하지 못하고 몇 달씩이나 심리전을
펴면서 허송세월 했던 거요."
"흥. 몰래 우리 집에 침입했던 것도
당신이었군."
"그렇습니다."
"잘하는 짓이군.경찰관이 그런 불법을
저지르다니! 당신을 불법 가택 침입죄로
고발하겠어!"
"당신은?"
"흐흥. 증거가 있으면 얼마든지
체포하라구!"
"당신이 저지른 그 범죄를 인정은
하는군?"
"그래, 내가 했다! 하지만 어쩔 테야?
증거를 대봐! 증거를! 하하하하.......
이거 재미있군. 감방에는 당신이 가게
생겼으니."
그때 김석기가 빙글 웃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순간 나는 눈이
뒤집혔다.
나는 가택수색 영장을 소지하고 있어. 다만
당신이 보는 데서 집행하지 않았을
뿐이오."
"뭐야?"
"그리고 방금 당신 입으로 말한 그게
증거요. 이 소형 녹음기에 우리가 한
대화가 모두 녹음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또
일러 두지만 그동안 당신과 전화로 나눈
해골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녹음되어 있고,
지금쯤 치안본부 특별수사대가 당신 집을
덮치고 있을 거요. 당신이 화학 지식을
자랑스럽게 얼핏 얘기했었지. 전화로
말이오. 농크롬산이라는 화학
약품을....... 아마 당신 집 어딘가에서 그
흔적을 찾아내게 될 거요."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완전범죄를
못했던 상황이었다. 나는 발악을 하듯
외쳤다.
"당신!......당신이 형사야 뭐야?
수사경찰도 아니면서......."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방문이
열리면서 정복 경찰관이 들어왔다.
깁석기가 끌려 나가는 뒤통수에다 대고
말을 했다.
"내가 만약 경찰 제복을 입지 않았더라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기어코
찾아내었을 거요!"
나는 독방에 감금되었다.
쇠창살 너머로 유난히 푸르고 높은 가을
보인다.
나의 변호사는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정신분열 초기증세, 신경쇠약, 노이로제,
결벽증, 소심증, 편집증 등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를 첨부하여 나를 금치산자로 규정할
것을 청원했으나 재판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상초유의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인간이기를 포기한 피고에게 극형을
내린다는 것이 판결문의 요지였다.
나는 사형이 확정되어 그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다. 지금 와서 한 가지
불만스러운 것은 변호사가 나를 정신병
환자 취급을 했다는 점이다.
내가 정신분열 증세를 보인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지금 감기증세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아직 초가을인데 감방 안은 무척
쌀쌀하다.
시멘트 바닥이라서 그런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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