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살자 가족에 대한 조사
자살자에 대한 평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적이다. 특히 종교적 입장에서 자살은 자기살인 (Lactantinus, 이상원, 2004에서 재인용)으로 간주된다. 사회과학자들 역시 자살은 자기통합의 실패로 보는 관점을 견지해 오고 있다. Durkheim(1897)은 규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개인의 욕망이 규제에서 일탈하는 아노미로 자살의 원인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 후 Durkheim의 고전적 아노미이론으로 자살 을 설명하고자 했던 사회과학자들은 자살을 하나의 실패로 규정해 왔다. Merton(1938)은 아노미를 목 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간의 불일치로 설명했고 Gibbs와 Martin(1964)은 상충되는 역할간의 긴장을 통합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지위통합의 실패로 보았다. 사회과학자들은 이처럼 아노미를 다양 하게 변주했지만 그 기저적 정의는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평가가 위와 같이 대체로 부정적이기에 사회적 낙인과 편견은 자살자 는 물론 가족에게까지 이어지고(Crinar, 2005; Jordon, 2001) 가족들은 다양한 심리ㆍ정서ㆍ사회ㆍ문화적 부적응 양상을 보인다. 자살자 가족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비중있게 이루어진 주제는 위와 같은 부적응 문제이다. 하지만 우울과 불안장애를 비롯한 부정적 반응은 가족관계에 따라 그 정도와 지속 성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McIntosh와 Wrobeleski(1988)는 자살자 가족이 겪는 애도반응(grief reaction)과 이로 인한 고통 등은 자살자와의 가족관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Reed와 Greenwald(1991)는 가족의 자살로 인한 고통과 충격은 자살자의 부모들이 배우자보다 강하게 경험하 고 자녀와 형제는 그 정도와 지속성이 약하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관측은 최근에까지 이어져 자녀를 잃은 부모의 상실감은 부모와 배우자 상실로 인한 고통보다 더 강하고 지속적(Leathy, 1992 ; Stroebe and Schut, 2001)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연구들은 자살자 가족의 애도반응은 가 족간의 위치보다는 가족간의 애착과 같은 관계의 질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하고 있다(Worden, 2001). 특히 알코올이나 약물남용 등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주었던 가족의 자살은 다 른 양상을 보인다. Tall과 Kolves, Sisask 그리고 Varnik(2008)는 261개의 자살사례에 심리학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연구로 접근하여 알코올남용자살자 가족과 그렇지 않은 자살자 가족을 비교 연구했는데 알코 올남용자살자의 배우자는 그렇지 않은 자살자 배우자보다 분노의 감정을 더 많이 느끼고 자녀들 역시 죄책감을 덜 느낀다고 보고하고 있다. 피붙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가족은 서로의 존재를 이어주고 확인하는 존재의 끈이라고 할 수 있 다. 이러한 존재의 비극적 상실로 야기된 고통과 슬픔 등은 Virginia Wolf가 언급한 그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른바 사적인 언어(private language)이다. 가족의 자살로 인한 고통과 슬픔 등이 여 기에 해당될 것이다. 자살자 가족의 애도반응은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객관적으로 측정이 불가능 한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비교측정으로 접근하여 자살자 가족의 비탄과 충격 등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취했다고 판단된다. 자살자 가족의 자살후 애도반응이나 심리, 정서적 문 제를 다룬 많은 연구들이 자살자 가족과 다른 유형의 죽음을 목도한 사망자 가족을 비교 분석했다. Cynthia와 Karus 그리고 Jiang(2000)은 암으로 부모를 잃은 57가정의 자녀 64명과 부모가 자살을 한 11가정의 자녀 16명의 우울증상과 행동문제를 비교 연구했는데 연구결과에 의하면 자살자 가정의 자녀들은 암으로 부모를 잃은 가정의 자녀들과 비교할 때 우울증상, 부정적 기분, 대인관계에서의 문 제점 등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가장 최근에 Seguin과 Lesage 그리고 Kiely(2009)는 자녀가 자살한 어머니 16명과 자동차 사고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 16명을 비교 연구했는데 양자 모두 불의의 죽음이라는 유사성이 있지만 비극성은 자살이 사고사보다 심하고 애도반응과 과정 역시 심각한 양상 을 보인다고 했다. 위의 연구들에 비해 또 다른 연구들은 자살자 가족들이 겪는 애도반응과 상실의 과정은 다른 유형 의 죽음들, 즉 예상치 못한 죽음이나 사고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반응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Jordon, 2001 ; Ellenbogen and Gratton, 2001; Cleiren and Diekstra, 1995)고 보고했다. 특히 매우 폭력적인 죽음이나 사회적 낙인이 심한 죽음인 경우 가족들은 다양한 정신적 문제와 손상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보고한 바 있다(Mitchell and Everly, 1996 ; Zisook and Schuchter, 1993 ; Spratt and Demney, 1991). 하지만 애도반응과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손상과 고통의 차이가 없다 할지라도 자살자 가족들이 가족의 자살에 대해 어떤 의미를 구성하고 무엇을 지향하는가는 동일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2. 개별사례요약
(1) 사례 1 연구참여자 1은 2008년 현재 52세로 서울 근교의 지방소도시에서 목축업을 하고 있다. 참여자의 아 버지는 12년 전 구정 전날에 자살을 했다. 참여자의 표현대로 “강산도 변하는 세월이 지났지만” 참여 자는 아직도 아버지가 자살을 했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참여자는 지금도 아버지가 왜 자살 을 했는지 그 원인조차 추측하지 못하고 있다. 참여자의 아버지는 당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였다. 문하에는 전수생도 있었고 지역사회에서도 존 경을 받고 있었다. 대지주는 아니었지만 “서른 마지기”(약 6천평) 정도의 전답을 지니고 있었다. 농협 에 부채도 없었고 농사수입과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 그리고 간간이 행사에 나가 받는 사례비 등의 수입으로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연구참여자가 기억하는 한 가정불화 역시 없었고 대인 관계 또한 원만했다고 한다. 참여자의 아버지는 구정 전날에 자살을 했다고 한다. 참여자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음식을 만들고 고스톱을 치며 흥겨워하고 있을 때 참여자의 아버지는 마당에 서성이다 이유도 없이 “에이 개같은 놈 들”이라는 욕을 한 후 집을 나갔고 다음날 아침 가족들은 집 뒷산의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한 아버 지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소나무는 동네 뒷산 성황당 근처에 있는 나무로 동네 사람들은 “귀 신붙은 자살나무”로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고 한다. 참여자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같은 동네에 살던 참 여자의 당숙과 친척 아저씨뻘 되는 두 사람이 그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고 한다(참여자의 거 주지는 집성촌(集姓村)으로 마을사람 대부분이 친척이다). 참여자는 현재까지 아버지가 살던 집에서 살고 있는데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가 자살한 흔적을 보고 살아야만 한다.
(2) 사례 2 사례2의 연구참여자는 2008년 현재 45세로 금융기관에 근무하고 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금융기관에 취직을 했고 IMF때에도 위기를 잘 넘겨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직장을 다니고 있 다. 참여자의 표현대로 “억세게도 운이 좋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사설영어교습소를 운영하는 부인(43세)과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참여자의 인생여정은 그의 표현대로 “화려할 것은 없지만 그런대로 순탄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자 살은 “아직도 풀 수 없는 숙제이고 평생을 지고 가야하는 무거운 짐”이라고 한다. 참여자의 부모는 K시 근교의 농촌에서 살고 있었다. 참여자의 부모는 평소에도 부부금슬이 좋지 않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5년 전 참여자는 어머니가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버지의 전언에 의하면 자살하는 날 저녁을 먹은 후 저녁 찬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언성이 높아졌 고 약간은 심하게 다투었다고 한다. 서로 다투다 참여자의 어머니는 “평생 종노릇하고 살았다”며 방 을 나갔고 뒤이어 창고에 있던 맹독성의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자살 사건이 있은 지 2년이 안되어 참여자의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주위에서는 구구한 말들이 많았지만 참여자는 이를 수용했다.
(3) 사례3 사례3의 참여자는 2008년 현재 38세로 슬하에 자녀는 없다. 참여자는 C도 C시에서 슈퍼마켓을 운 영하고 있다. 이곳은 참여자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이지만 남편이 자살을 한 후 이곳으로 이주했 다. 참여자가 기억하고 있는 남편은 생활력이 강하고 매우 성실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참여자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 끔찍한 투신자살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고 했다. 참여자의 남편은 6년 전에 자살 을 했다. 당시 참여자와 남편은 수도권의 소도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당시 남편은 지역에 서는 소문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참여자의 남편은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게를 참여자에게 맡기고 서 울 근교의 국립공원에서 아이스케키장사를 했다고 한다. 참여자의 남편은 약 500개의 아이스케키가 든 아이스박스를 매고 해발 800미터에 육박하는 산정상까지 올라가 아이스케키를 팔았다고 한다. 이 렇게 주말에만 하는 장사수입이 “웬만한 월급쟁이” 수입보다 좋았다고 한다. 참여자와 그의 남편은 열심히 일한 결과 중형아파트 한 채와 10여평 정도의 상가를 소유할 수 있었다. 참여자의 구술에 의하면 남편은 상장회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증권에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하 지만 상가 사람들과 어울려 증권투자를 하게 되었고 얼마가지 않아 계좌는 “깡통계좌”가 되었고 아파 트와 상가는 경매에 붙여졌다고 한다. 참여자의 남편은 손해를 복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늘어나는 것은 빚뿐이었다고 한다. 참여자는 남편의 자살을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의 극단적 선택이라고 나름대로 추측을 했는데 자살의 방법이 너무나 끔찍했다. 참여자와 남편은 재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인을 찾아갔다 거절을 당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에 고가도로 위에 차를 세웠다고 한다. 고가도로위의 정차는 불법이지만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차 를 세운 후 참여자의 표현대로 “귀신에게 홀린 것처럼” 걸어가더니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가도로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참여자가 목격한 남편의 최후모습은 두개골이 파열되어 골수가 흘러나오고 피범 벅이 된 끔찍함 그 자체였다고 한다. 참여자는 주위로부터는 “서방 잡아먹은 X”, 경찰로부터는 남편을 밀어 추락사시켰다는 의심을 받 으며 살다가 현재의 거주지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4) 사례 4 사례 4의 연구참여자는 2008년 현재 38세로 서울에서 중국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참여자의 가족 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은 두 살 터울위인 형의 죽음이었다고 한다. 참여자의 형은 약 20년 전에 자 살을 했다고 한다. 20여 년 전 참여자의 가정은 매우 빈한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릴 적 유행성 뇌출 혈에 걸려 사망했고 당시 참여자의 아버지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두 형제를 데리고 서울로 이주했다. 고향의 가산을 총정리해서 얻은 것이 서울 변두리의 지하 단칸방 전세였다. 참여자의 어머니는 파출부를 했고 두 형제는 신문배달을 했다고 한다. 참여자의 형은 인문고등학교를 나왔지만 대학에 진학을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약 석 달간 가구 공장에서 보조기능공으로 일하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산행을 다녀온 후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 살을 했다고 한다. 참여자의 형은 유서를 남겼는데 참여자에 의하면 유서의 내용이 유치하면서도 한 없이 슬펐다고 한다. 아주 짤막한 유서였는데 내용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웨이터로 일하다가 부잣집 딸을 꼬셔 폼나게 살고 싶었다”였다고 한다.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나 염려 같은 것은 없었다고 했다. 형의 자살후 참여자는 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현재는 분가하여 살고 있다. 부인은 중국 음식점에서 배달관리와 홀서빙을 맡고 있고 참여자는 주방을 맡고 있다. 슬하에 2녀가 있다.
(5) 사례 5 사례5의 연구참여자는 2008년 현재 43세이다. 3년 전 부인이 음독자살한 후 딸(4세)과 살고 있다. 연구참여자는 군제대후 식품유통업체의 배달기사로 취업을 했다. 아내는 당시 연구참여자가 일하던 회사의 경리 여직원이었다. 연구참여자는 32세 되던 해 아버지의 유산을 밑천으로 하여 식당 등에 식 자재를 납품하는 유통업체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사업은 번창했고 30대 후 반에 상가빌딩(연건평 1,000㎡, 약 300평)을 소유할 정도로 성공을 했다. 하지만 연구참여자의 표현에 의하면 “집안에 망조가 든 것은 돈을 번 이후”였다. 연구참여자에 의하면 그의 부인은 “의부증과 망상이 심했다”고 한다. 참여자의 아내는 남편 주위에 있는 모든 여자를 의심했고 참여자의 행동반경과 동선까지 파악할 정도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고 한다. 참여자는 당시를 “지옥”이라고 술회했다. 참여자는 부인이 자살을 하기 전 보험모집인(여성)과 몇 차례 만났다고 한다. 보험모집인은 참여자 의 군대 동기의 여동생이었다고 한다. 참여자는 필요 때문에 화재보험에 가입했고 시장 상인들도 소 개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 몇 차례 만남이 있었는데 참여자의 아내는 이것을 외도로 단정했 고 참여자의 표현대로라면 “극악”을 떨었다. 참여자의 아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는데 그 유서에는 “살아서 못 갚은 거 죽어서 귀신이 돼 서 갚겠다”, “니가 만나는 X들 00구멍은 다 막아 놓을 것이다”, “너하고 나하고는 꼭 지옥에서 만날 거다”, “나쁜 놈, X 같은 XX" 등등의 욕설과 원망 그리고 저주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참여자는 유 서를 소각했다고 한다.
3. 떠난 자의 잔여범주로서 남은 자의 삶
자살자 가족들이 가족의 자살 후 겪었던 생애경험을 현상학적 사례연구방법으로 분석하 여 자살자 가족들의 경험의 본질구조를 살펴보고자 했다. 연구참여자1의 경우 경험의 본질적 주제는 은적지파기 와 암호에서 맴돌기 , 참여자2의 본질적 주제는 소생적 파국 과 버려진 땅에 씨뿌리 기 , 연구참여자 3은 낯설음으로 살아가기 와 마중물 붓기 , 연구참여자 4는 비극의 짐 떠맡기 , 연구참여자 5는 정지된 생애시간 으로 해석되었다. 위와 같은 연구참여자들의 개별경험의 본질구조를 관통하는 전형적 주제는 떠난 자의 잔여범주로 서 남은 자의 삶 이라고 해석되었다. 가족구성원의 죽음은 가족사에 불행한 사건으로 등록되는 동시 에 또한 떠난 자와 남은 자의 분리라는 과업을 남긴다. 자연사, 사고사, 병사 또는 천수를 누리고 죽은 호상(好喪), 요절(夭折)을 불문하고 산 자는 죽은 자와 물리적, 심리적으로 영결(永訣)하여 일상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자살로 가족을 잃은 연구참여자들의 경우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죽은 자와 유착(癒着)되어 떠난 자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러한 심리적 유착은 가족에 대한 기억과 추 도가 아니라 세상 사람으로서의 실존양식이라고 칭해도 무방할 만큼 전인격적이고 전생활적이다. 연구참여자 1은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만을 유지한 채 자살한 아버지의 마지막 넋두리를 해독하는 데에 골몰했고 지역사회에서는 떠도는 섬으로 부유하고 있었다. 연구참여자 3 역시 현실의 삶 이외에 남편과의 정신적 결합으로 영위하는 또다른 상상의 삶을 살고 있었고 연구참여자 4는 오랫동안 자살 한 형의 환생으로 살아갔다. 연구참여자 5 역시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자살한 부인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 점철되었다. 연구참여자 2는 일견 자살한 어머니와 분리되어 일상의 정상과 평 온을 회복한 듯이 보이지만 어머니의 대지와 유착된 상태에서 가족사를 재구성했다. 연구참여자들의 심리적 유착은 당사자들의 삶을 떠난 사람들의 잔여범주로 규정하는 기제로 작용 했다고 해석된다. 잔여범주로서의 삶은 떠난 자들의 유업을 계승하거나 못다 이룬 숙원을 이루는 분 리된 상태에서의 연계가 아니라 유착된 상태에서의 몰아적(沒我的) 혼돈(chaos)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질서하고 피아가 분별되지 않는 상태에서 연구참여자들은 떠난 자의 그림자나 또는 끝자락을 잡고 사는 생애를 경험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은 연구참여자 4의 경험구조가 단적으로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여타 연구참여자들의 생애경험도 맥락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사료된다. 연구참여 자 1은 농촌지역사회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였으나 아버지의 자살 이후 아버지의 흔적을 맴도는 생활을 했고 연구참여자 2는 어머니의 자살 이후 그 비극을 재탄생시키는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연구참여자 3의 경우 자신을 은폐하고 자살한 남편의 그림자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참여자 5는 정지된 생애시간이라는 본질적 주제가 시사하듯이 그의 생애시간은 부인이 자살한 시 점에 고정되어 있고 그 이후의 시간은 부인과의 관계를 단절하기 위한 끝물시간이었다고 해석된다. 지금까지 보고된 자살자 가족에 대한 연구들은 자살이라는 비극에 초점을 맞춰 가족들이 겪는 심 리ㆍ정서적 고통과 사회적 부적응만을 다루었다. 본 연구의 경우 비록 5명의 연구참여자들에 국한된 분석이지만 자살자 가족들은 가족의 자살이라는 현상에 대해 의미를 구성해야만 하는 숙명적 책무를 부담하고 있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의미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삶의 양태가 발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살자 가족들의 심리적 안정과 일상성을 회복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천적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자살의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 가족들의 정신적 외상과 혼란 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전문 가의 개입이다. 자살사건이 발생하면 경찰당국의 조사가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자살로 인정될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할 수밖에 없다. 자살에 대한 관료적 정의(官僚的 定義)에 의하면 자살은 유서가 있어야 하고 자살할 만한 충분한 이유 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불충분한 경우 가족들이 살 해의 혐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당사자들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연구참여자 3의 경우 남편을 밀어 추락사시켰다는 의심을 받고 이에 관한 조사를 받았다. 그 밖의 연구참여자들도 본격적 인 조사를 받지는 않았지만 완곡한 형태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가족들이 가족의 자살 을 자신의 귀책문제로 인지하고 왜곡된 의식을 갖게 할 위험이 높다고 하겠다. 둘째는 자살자 가족을 위한 지지 프로그램에 분리를 위한 의례의 도입이다. 우리의 현실은 자살자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특화된 프로그램도 미비하고 개입 역시 상담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지지적 상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분리를 위한 의례이다. 의례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자기를 확인하는 내 적 점검이라 할 수 있다. 백일, 돌, 입학, 졸업, 생일 등 인간의 일생은 각종 의례의 연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의 경우 우리는 장례식이라는 의례를 통해 죽은 자를 떠나보내고 산 자와 죽은 자는 분리된다. 하지만 자살자 가족의 경우 물리적인 영결식은 치루었지만 심리적인 영결식은 남겨두 고 있다. 자살자 가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 심리적 영결을 위한 의례적 프로그램을 구상할 필요 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의 한계와 후속 연구를 위한 제언을 부기한다. 본 연구의 경우 자살자 가족들 중 특정 구성원만 참여했다. 때문에 가족 전체의 경험은 구조화할 수 없었다. 자살자 가족은 배우자, 부모, 자녀, 형제, 친척 등 가족내 위치에 따라 그 반응과 의미구성 등도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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