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홈리스의 속 사정 (게이편)
어릴 적 영어학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그때 집이란 단어를 영어로 써야 했는데, 영단어 ‘house’ 가 생각나지 않아, ‘home’ 을 썼다. 그랬더니 나중에 채점을 마친 선생님 왈, ' house’ 가 건물 로서의 ‘집’을 뜻 한다면, ‘home’은 가족이 있는 '가정'을 뜻한단다. 둘은 얼핏 비슷한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른 단어라며.
나는 꽤 오래전부터 '집(home)'을 잃었다. 고등학교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짧은 기간 몇 차례 씩 이사를 다녀야 했고, 학교선 생남 들이나 친구들 중에 내 속사정을 아는 이는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에 들어가게 됐고, 자취와, 기숙사, 다시 자취의 기간을 거치는 동안 나는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았다. 더 이상 그곳에 '내 집'은 없었으니까.
졸업 후 군대를 갔고, 거기서는 BOQ생활을 했다. 2년 4개월의 여정을 마치고서 잠시 가족들과 고향에 머물렀었는데, 그때는 잠시 집이 있었던 걸까. 그해의 말. 나 홀로 상경을 했다. 제기동, 안암골에 자취방을 얻어 살았던 3년, 망원동 무지갯빛 공동체에 속한 2년, 그리고 노량진에 보금자리를 튼 지난 2년. 그 어디에도, 내 집은 없었다.
스무 살 적, 이쪽 친구랑 신기해하며 종로와 이태원을 탐방하며 다녔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약간의 동질감과 소속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아는 가게도 손에 꼽고, 아는 사람들도 몇 안 되는 그 상황에서도.
몇 년 전 친구사이에 나오면서 내 게이 라이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연이 닿아 퀴어들이 모여사는 셰어하우스에 들어갈 수 있었고, 맘이 잘 맞는 친구들과 술 마시며 웃고, 울고, 또 여행도 제법 다녔다. 그리고 이제야. 뭐랄까, ‘친정'이란 게 생긴 기분이었다.
우울로 점철된 지독한 이번 여름동안 그 누구와도 거의 연을 끊고 살았다. 그리고, 한 달 전 퀴어 행사자리에서 마주한 반가운 얼굴들. 그간 연락 한번 없어도, 그저 얼굴만 봐도 반갑고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친정’에 다녀온 기분.
아, 이제야.
아직도 집이 없는 홈리스(Homeless)인 나다. 그래도, 이제는 돌아갈 곳이 생겼고, 만나면 정다이 웃고 떠들 친구들이 생겼다. 그렇게 내게 있어 ‘친정'이, 그리고 ‘시댁’이 생겼다.
아직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불안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의지하고, 그리워할 거리가 생겨 퍽 안심이 된다. 언젠가 종로의 길바닥에서 절 마주친다면 기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해 주시기를!
아직도 세상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도는 외톨이 젊은 홈리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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