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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고등학교 두발자유화에 대해서

by @블로그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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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에스콰이어'에 썼던 문화적 전유 이야기.

헤어는 자유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인생을 스스로 망칠 수 있는 때가 오자 나는 일단 미용실로 달려갔다. “금발로 해주세요.". 원장은 말렸다. “총각은 얼굴이 까매서 금발은 안 어울리는데 일단 갈색으로 해보지?”. 나는 우겼다. “아니요. 금발로 하고 싶어요.”.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금발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야. 먼저 탈색을 해야 되는데, 총각은 머리가 워낙 까매서 시간이 많이 걸려요.”. 상관없었다. 초샤이어인처럼 황금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을 갖고 싶었다. 결국 나는 이겼다. 미용실에 앉아서 종일 염색을 하는 지루함을 잡지 몇 권으로 버티자 금발이 거기에 있었다. 원장은 미소를 지었다. 화양리에서 오토바이에 가스통을 매달고 질주할 준비가 되어서 속이 시원하냐는 듯한 미소였다.

2021년의 스무 살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90년대는 달랐다. 우리 선배 세대인 386에게 헤어의 일탈은 ‘장발' 정도였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가 등장하자 모든 게 바뀌었다. 티브이에는 금발과 레게머리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건 처음으로 맛보는 ‘문화적 자유'였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레게바가 유행하자 멋 좀 부리는 남자들은 모조리 머리를 배배 꼬고 다녔다. 과감하게 드레드를 한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머리를 꼬고 싶었다. 하지만 드레드를 하면 머리를 감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순순히 포기했다. 나의 두피는 굉장한 지성이다. 머리를 하루만 감지 못해도 텍사스 유전처럼 기름이 모공에서 터져 나온다. 드레드라니.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대신 내가 선택한 건 ‘호일펌'이었다. 고슬고슬하게 뻗은 머리카락에 왁스를 발라 고슴도치처럼 세우고 미용실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다. 사실 미용실 원장이 호일을 풀자마자 나는 깨달았다. 나는 브롱크스의 흑인 래퍼도 아니었다. 영화 <고>의 구보스카 요스케도 아니었다. 크게 상관은 없었다. 나는 애초에 어울리는 머리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머리를 내 마음대로 망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동양인이라면 드레드나 호일펌을 하고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한국에서보다는 조금 더 거친 눈길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문화적 전유’ 라는 개념 때문이다.

고등학교 두발자유화에 대해서


다른 인종이나 국가의 문화를 차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문화적 전유'라는 말은 201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뉴스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소수자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요구하던 소셜미디어 운동이 막 피어오르던 시기였다. ‘문화적 전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2016년 3월 샌프란시스코의 한 대학교에서 일어났다. 흑인 여성인 학교 관계자가 드레드 머리를 한 백인 남학생을 불러 세운 뒤 “그것은 나의 문화이니 너는 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압적으로 윽박지르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그 동영상은 곧바로 미국 전역에서 뉴스로 전해졌다. 그 시기 미디어와 여론은 백인 남학생에게 동정적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세상은 소셜미디어가 아니다. 당신의 신념에 어긋난다고 해서 불특정 누군가를 몸으로 막아 세운 뒤 비난을 하는 태도는 허락되어서는 곤란하다. 세상은 거대한 시위장이 아니다.

하지만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자 이는 지나치게 넓게, 공격적으로 과용되기 시작했다. 2017년 미국 포틀랜드의 백인 여성 2명은 부리또 가게를 열었다가 문화적 전유라는 공격을 받고 문을 닫았다. 멕시코인들의 전통 요리를 아무런 개런티(?)도 지불하지 않고 함부로 이용해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얻을 이득을 갈취했다는 공격이었다. 2018년에는 미국의 백인 고등학생이 중국 의상 치파오를 입고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렸다. 중국계 미국인을 비롯한 수많은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학생은 “나는 드레스가 예쁘기 때문에 입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아델이 드레드를 하고 파티에 참석한 사진을 올리자 또 한 번 소셜미디어는 난리가 났다. ‘우리의 문화를 빼앗지 말라'는 말은 이제 2021년의 소셜미디어에서 당신이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문장이 됐다.

케이팝이 세계적인 오락거리가 되는 순간 한국인 역시 ‘문화적 전유'라는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한국에서 이 개념이 가장 크게 널리 알려진 순간은 박재범이 <DNA Remix>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린 순간이었을 것이다. 박재범이 드레드를 하고 나오자 댓글창은 터져 나갔다. 박재범은 이틀 만에 동영상을 지웠다. 그리고 이렇게 항변했다. “우리는 소수 집단을 괴롭히는 다수 집단이 아니다. 문화를 훔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당신들의 동료이고 당신들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 얕은 지식으로 힙합과 흑인 문화를 재단하는 사람들을 바로잡을 힘이 있다.”. 흑인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뮤지션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이를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문화적 전유'는 대단히 미국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오랜 인종차별과 제국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은 대중문화에서 피지배 국가나 인종의 정체성이 담긴 문화를 널리 마음껏 차용해 왔다.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문화적 전유'을 반대하는 소셜미디어 운동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핍박받았던 흑인들의 목소리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침내 하나의 운동이 됐다. 이를테면 가수 솔란지의 노래 <Don’t Touch My Hair>는 흑인 헤어 문화적 전유'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노래일 것이다. “내 머리를 만지지 마. 이건 내가 입은 감정이니까. 내 영혼을 만지지 마. 이건 내가 아는 리듬이니까. 그들은 이해 못 해.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미국 흑인들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자긍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드레드는 흑인들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여러 갈래로 땋고 뭉쳐서 만든 헤어스타일이다. 문제는 이 헤어스타일이 오랫동안 인종차별의 무기로 쓰였다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흑인은 직장에서 흑인 특유의 헤어를 금지당해 왔다. 프로페셔널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단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흑인은 직장에서 백인처럼 머리를 억지로 찰랑찰랑하게 펴야만 했다. 사실 단어 자체에 이미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드레드라는 단어는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의 머리를 처음 보고 ‘불쾌하다(Dreadful)’이라고 말한 데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문화적 전유는 다른 인종이나 국가의 문화를 차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흑인 흉내를 내겠다고 얼굴에 검은 칠을 해서는 안된다. 그건 피부색으로 핍박받았던 흑인들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서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충분히 의의가 있었다. 타 인종이나 민족의 문화를 차용하기 위해서 먼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자는 운동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개념이 미국이라는 국경을 넘어서면서부터 벌어진다. ‘문화적 전유 소셜미디어 운동가'들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문화의 특정 부분을 아예 차용해서는 안 되거나, 혹은 다른 문화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존중을 가진 이후에만 차용을 할 수 있다. 이건 어떤 면에서는 기준이 매우 흐릿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박재범은 미국 출신이다. 그 역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인종적인 핍박을 받고 성장했다. 그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힙합을 선택했다. 드레드를 선택했다. 그저 ‘멋지다는 이유'만으로 흑인 헤어를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는 흑인 음악인 힙합을 한국에 전한 일종의 문화 전도사에 더 가깝다. 누군가가 ‘문화적 전유'를 할 수 있는 자격은 어떤 기준으로 주어지는가. 아직 여기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질문을 던져보자. 그저 멋지다는 이유로 다른 인종과 민족과 국가의 문화를 차용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인가? 간지 난다는 이유로 홍대의 19살 여성이 드레드를 하는 것은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 20세기의 우리는 문화적 전유의 세계를 꿈꿨다. 국가가 인종과 문화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세계를 꿈꿨다. 20세기말에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지구는 어차피 작은 동네다. 서로서로 흉내 내고 베끼고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문화를 성장시켜 나간다. 그런 차용 없이 온전히 자신의 문화만으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박재범은 말했다. “우리가 서로의 문화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너무 지루해질 것이다.”

‘문화적 전유'는 수많은 경계 위에서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국가의 경계, 민족의 경계, 인종의 경계를 정확하게 둘로 가른 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교환을 모조리 문화적 전유라고 일컫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일까? 미국에서 부리또 가게를 연 백인과 한국에서 ‘소울푸드' 음식점을 낸 한국인은 파렴치한 문화적 도둑들인가?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식 드레스를 입고 졸업파티에 참가하는 것은 패션 도둑질인가? 모든 국가와 민족과 인종의 경계가 무너지고 뒤섞이는 것이 미래라고 생각했던 내 세대에게 문화적 전유를 둘러싼 논쟁은 소셜미디어 시대의 우리가 오히려 20세기 이전의 ‘부족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징조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맞다. 어쩌면 나는 시대에 한없이 뒤처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은 시대정신이 되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스무 살에 하지 못했던 드레드를 언젠가는 하고 싶다. 당신에게도 평생 한 번은 꿈꿔온 헤어스타일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다. 나에게 그것은 확실히 드레드다. 그때가 되면 나는 어쩌면 가슴팍에 “저는 흑인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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