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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 <세일즈맨> (2017)

by @블로그 202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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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오랫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었으며, 여러 차례 영화로 만 들어졌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21세기 이란을 배경으로, 원작 제목에서 ‘죽음’을 뺀 <세일즈맨>(2017)이라는 영 화를 선보였다. <세일즈맨>은 『세일즈맨의 죽음』을 단순히 영화로 옮긴 작품이 아니다. <세일즈맨>에서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연극을 공연하는 형식으로 소환되고 있다. 이런 형식의 영화는 많지만 <세일즈맨>은 연극 밖 현실과 연극 안의 내용이 서로 조응되도록 절묘하게 직조한 수작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끝자락에서 몰락하는 가장의 비극을 그린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21세기 이란에 거주하는 젊은 부부의 갈등으로 변환한 영화 <세일즈맨>은 원작의 공간, 인물을 재배치하고, 죽음의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연극과 영화라는 매체 변환의 효과를 십분 창출한 독립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오랫동안 재생산되었다. 연극, 영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콘텐 츠로 제작되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대중서사의 인기 있는 레퍼토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오랜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로서 현대인의 정체 성, 가정의 해체가 불러오는 과거라는 향수 등의 모티 프는 섬세한 변주를 통해서 언제나 세태에 맞게 가공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서 밀러는 이 작품으로 1947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으며, 초연 이후 2년 동안 724회의 공연이 이어져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연극계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20세기 중반에 나온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세계 각국에 서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킬러 콘텐츠로서 힘을 갖고 있다. 세일즈맨이라 는 개념은 20세기 산물이며, 『세일즈맨의 죽음』은 20 세기 남성 노동자의 고뇌와 애환, 가부장으로서의 책임 과 부담을 묘사한 희곡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대 공황의 여파에 시달리는 193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이 제는 회사에서 퇴출될 일만 남은 63세 세일즈맨 윌리의 몰락과 비극을 다룬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 다. 알려진 작품만 꼽아 보아도, <세일즈맨의 죽음>(라 즐로 베네덱, 1951), <세일즈맨의 죽음>(알렉스 시갈, 1966), <세일즈맨의 죽음>(폴커 슐렌도르프, 1985) 등 이 있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21세기 이란을 배경 으로, 제목에서 ‘죽음’을 뺀 <세일즈맨>(2017)이라는 영 화를 선보였다. <세일즈맨>은 『세일즈맨의 죽음』을 단순히 영화로 옮긴 작품이 아니다.

 

<세일즈맨>에서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연극을 공연하는 형식으 로 소환되고 있다. 이런 형식의 영화는 많지만 <세일즈 맨>은 연극 밖 현실과 연극 안의 내용이 서로 조응되 도록 절묘하게 직조한 수작이다. 흔히 연극 속 내용과 현실이 유사하게 흘러가는 방식이 쓰이곤 하는데, <세 일즈맨>은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서사 가 실체적 진실을 복원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구조이 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로 세상에 이름을 알 린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 영화에는 공통적인 요소 가 등장한다. 바로, 사건의 진실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숨겨진 비밀이 존재하고, 누군가 돌발적인 죽음을 맞이 하며, 종국에는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 그것이 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세일즈맨>뿐 아니라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 <누구나 아는 비 밀>(2019)도 모두 그러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 서 아쉬가르 파라디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장 르 요소를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세일즈맨>에서 도 아내가 폭행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남편이 범인을 쫓고 그 과정에서 범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연속된다. 일반적인 미스터리 영화는 범인을 잡는 데 초점이 맞춰 져 있어서 범인을 검거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얻게 되 지만, <세일즈맨>에서 범인 추적은 스토리 추진의 동 력일 뿐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핵심 요소는 아니다. 범인이 잡히는 순간 관객은 오히려 곤혹스러움을 느끼 게 되고 진실과 대면하는 고통이 가슴을 짓누르게 된 다. 본고에서는 <세일즈맨>이 어떻게 희곡 『세일즈맨 의 죽음』을 변형하고 활용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 히 연극에 등장하는 공간과 인물들이 어떻게 변주되고 분산되는지 살핀 다음, 궁극적으로 죽음이라는 사건의 의미가 재생산되는 지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1. 중심점이 이동된 공간

<세일즈맨>은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공연하는 무대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침실, 부엌, 현관에 이어 서 전체 공간을 보여주는 숏으로 오프닝 시퀀스가 구성 되었다. 아무런 대사 없이 스틸 컷을 이어붙인 느낌의 몽타주 시퀀스로 영화를 시작하는 것은 아쉬가르 파라 디 감독의 일종의 인장(印章)이다. 마치 박제된 것 같은 이 장면들은 <세일즈맨>이라는 영화가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연극을 기반으로 탄생되었다는 것을 각인 시키면서, 이후 보일 역동적인 화면들과의 극명한 대비 를 마련한다. [3] 고정되어 있는 화면은 연극의 특성을, 흔들리는 화면은 영화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24시간 동안 벌어진 현재의 사건을 다루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다채로운 무대 세팅이 필요하지 않은 연극이다. 윌리의 집 소파 에 과거의 인물을 앉혀 대화를 나누거나, 앞마당으로 상상되는 무대 앞쪽으로 배우가 나오면 바로 과거로 시 제가 전환될 수 있는 방식이다. 아서 밀러가 미국의 대 표적인 현대 희곡작가로 일컬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처럼 간소하고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도입했기 때문이 다. 영화 속에 보이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무대 공간 은 원작 지문에 충실한 편이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 의 죽음 첫 페이지에 묘사된 윌리의 집을 표현하는 무 대는 다음과 같다.

 

희곡은 이렇게 시작하지만 영화에 보이는 연극 무대 는 주인공들의 일터로 제한된다. <세일즈맨>의 주요 무대는 주인공 부부가 이사하기 전 아파트와 잠시 거주 하는 아파트이다. 희곡에도 아파트는 배경을 설명하는 지문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윌리 부부의 집이 아파 트에 둘러싸여 있다는 설정이 처음부터 묘사되고 희곡 의 마지막 문장은 “어두워지는 무대에 플루트 소리만이 울리고, 창 너머로 견고한 아파트 건물들이 집중 조명 된다.”이다. 1940년대 발표되고 초연된 이 희곡과 연극 에서 아파트는 변화하는 도시 주거환경을 상징하고 윌 리를 주변부로 몰아가는 세태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 지만 [5], 영화 <세일즈맨>은 21세기 이란의 젊은 부부 의 삶과 비극을 조명하기 위해 아파트라는 현실적 공간 을 적극 끌어들인다. <세일즈맨>은 연극 무대 세팅을 보여주는 오프닝에 이어, 같은 극단에서 활동하는 에마드, 라나 부부가 살 고 있는 아파트가 붕괴 위기에 놓이는 상황을 보여준 다. 아파트 앞에서 벌어진 공사 때문에 아파트 벽에 균 열이 생기고 유리창이 깨지는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주 민들은 긴급 대피를 시작한다. 영화 초반 아파트 붕괴 라는 위기가 가정을 품고 있는 집이 흔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영화 종결에 노인의 죽음을 둘러싼 위기 는 부부의 불화와 가정의 붕괴를 이야기한다. 결국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의 무대였던 단독주택이 <세 일즈맨>이라는 영화에서는 아파트로 중심점이 이동되 었다. 시대의 변화, 인물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한 적절 한 공간이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 특성이 분산된 인물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는 35년간 직장 생활을 한 60대 가장이다. 한때는 최고의 세일즈맨으로 성과를 올리던 윌리는 대공황 이후 점차 내리막길을 걷 다가 이제는 평생을 몸담아온 직장에서 해고된 처지이 다. <세일즈맨>의 남자 주인공 에마드는 연극 <세일즈 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윌리 역할을 맡고 있다. 30대로 추정되는 에마드는 고등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담당하 는 교사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연극 속 윌리를 표상하 는 직접적인 인물은 에마드가 아니라 같은 극단에 소속 된 연장자 배우 바박과 불미스런 사건의 주인공인 이다. 즉,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는 영화에서 에마드, 바박, 노인이라는 세 명의 인물로 분 산, 투사되고 있다. 에마드는 연극에서 주인공인 윌리 역할을 하는 인물 로서, 바박은 연극 속 윌리의 친구인 찰리 역할이자 에 마드의 현실 속 조력자로, 노인은 희곡에서 죽음을 맞 이하는 윌리의 대리인으로 등장한다. 한 인물을 셋으로 분할하는 효과는 연극이라는 단일 무대 공연의 특성을 영화라는 매체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으로 보인 다. 윌리라는 주인공이 보내는 하루 안에 집약된 스토 리를 하나의 무대장치 안에서 표현해내는 희곡/연극을 그대로 영화로 재현한다면 필시 지루하다는 감상평을 불러올 것이다. 희곡/연극을 영화화 한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세일즈맨>이 돋보이는 이유는 원작을 가져와 영화 서사 안에 두되 단순 반복, 재생산 차원에서 벗어 났다는 점 때문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인물의 재창조 라고 할 수 있다. 희곡 속 윌리라는 한 인물의 특성을 영화에서는 여러 인물로 분산시킴으로써 영화 서사가 풍부해지고 인물의 성격도 오히려 뚜렷해지는 강점이 형성된다.

 

<세일즈맨>이 『세일즈맨의 죽음』을 변용한 예로 써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프란시스이다. 희곡에 서 윌리의 외도 상대였던 여인 프란시스는 <세일즈맨> 에서 재현된 연극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요 인물로 등 장한다. 영화는 연극의 단 세 장면만을 보여주는데, 그 중 첫 번째 장면의 핵심 인물이 프란시스이다. 그녀는 무대 밖 영화 속의 현실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에마드와 라나 부부가 아파트 붕괴로 급작 스럽게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임시거처로 마련한 아파트의 전 세입자 아후는 문란한 생활을 했던 여자로 추정된다. 영화에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 아후는 라나가 자신의 아파트 욕실에서 샤워 중 누군가에게 폭 행을 당하는 사건의 원인처럼 여겨지지만 아후에게 직 접적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남자를 집으로 들이고 그들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취한 것은 확실해 보 이지만 그렇다고 아후를 비난할 근거는 부족하기 때문 이다. 영화 속 연극에서 배우 사남은 프란시스로 분해 빨 간색 레인코트를 입고 윌리와 일탈의 공간에 머문다. 현 실에서 홀로 남자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라는 점에서 프 란시스를 연기하는 사남과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영화 속 인물인 아후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후의 빨 간색 원피스를 훑듯이 천천히 보여주는 카메라 앵글 역 시 두 사람의 연관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프란시스 역의 사남은 영화 초반 공연 최종 리허설에서 마음이 상해 무대에서 뛰쳐나간다. 윌리의 아들 버프 역할을 하는 배우의 웃음이 비위에 거술린 것이다. 사남은 “창 녀 역할을 하니 내가 우스워 보여?”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 이 말은 아후의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 구 구절절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아후는 혼자 아들을 키우 며 나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이웃들은 남자를 여럿 끌어들 이는 문란한 여자 정도로 아후를 기억하지만, 바박이나 노인처럼 실제 아후을 아는 사람은 그녀를 옹호하고 처 지를 안타까워한다. 연극 속 인물인 프란시스는 영화에 서 묘사된 사남과 아후의 현실 상황까지 반영되어 보다 중첩된 의미를 지닌 인물로 거듭난다. <세일즈맨>에는 희곡에 등장하는 두 아들이 삭제되 었다. 희곡에서 윌리는 슬하에 34살의 큰아들 비프와 32살의 차남 해피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 은 아직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로, 희곡 속 아들은 영 화에서 노인의 사위 마지드와 프란시스 역을 하는 배우 사남의 아들 사드라가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캐릭 터 상 연결점은 없어 보이나 두 명의 아들 역할로 등장 한다는 점에서 원작의 변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마지드는 윌리와 비프의 관계를 연상키는 인물이다. 윌 리는 자신의 생명보험금으로 장남 비프의 사업자금을 마련하고자 자살을 선택한다. 이에 비해 영화 속 노인 은 결혼을 앞둔 딸과 사위 마지드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35년을 함께 한 아내를 실망시 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텨본다. <세일즈맨>은 이처럼 참신한 캐릭터 변주를 통해 원작의 개성을 살리 면서 새로운 해석을 기입한다.

 

3. 재해석된 ‘죽음’의 의미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절정은 윌리의 죽음 이다. 인생의 마침표, 가족을 위한 마지막 희생, 아메리 칸 드림의 종말을 상징하는 윌리의 죽음이 <세일즈맨> 에서는 달리 해석된다. [6] 일단, 제목에서부터 ‘죽음’이 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 ‘왜’ 죽음이라는 단어를 삭제했 을까, 라는 질문은 <세일즈맨>이 『세일즈맨의 죽음』 과 맺고 있는 연관을 해명해주는 핵심이 될 것이다. 그래서 누가 죽는가?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윌리 가 죽지만 <세일즈맨>에서는 노인이 죽는다. 궁극적으 로 가족을 위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 만, 윌리와 노인의 죽음은 그 양상이 다르다. 윌리의 죽 음에는 타인의 그림자가 전혀 없고, 노인의 죽음에는 에마드의 흔적이 강하게 새겨져 있다. 그런 면에서 희 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작가 아서 밀러가 이야기한 바, 현대적인 비극, 즉 사회 비극의 풍모가 있다고 할 수 있고, 영화 <세일즈맨>은 철저한 21세기 판본의 멜 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35년을 일했지만 윌리는 죽는 순간까지 주택 할부금 을 갚지 못했다. 아내 린다는 어이없는 죽음을 선택한 남편의 장례식에서 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남편이 죽 어서야 마지막 할부금을 갚은 이들 부부의 삶은 아메리 칸 드림의 궤적과 흡사하다. 새로운 대륙을 개척한 세대인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윌리는 아버지와 동일한 믿음을 갖고 성실한 세일즈맨으로 살아왔지만 그를 기 다리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붕괴와 대공황의 현실적 여파뿐이다. 가족을 위해 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생명 뿐이라는 절박한 윌리와 다르게 <세일즈맨>의 남자 주 인공 에마드의 숙제는 매우 복합적이다. [9] 낯선 이의 침입으로 큰 부상을 입은 아내를 위로해야 하고, 극단 배우로서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하며, 문학 선생님으로 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고, 사건의 종지부를 찍는 탐 정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에마드는 고단하기만 하다. 에마드는 영화 속 연극에서 윌리를 연기하지만, 언뜻 보기에 윌리와는 거리가 먼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에마드는 노인의 죽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면 서 영화 속 연극에서 연기하던 윌리의 표상을 노인에게 로 전이시킨다. 영화에서 라나는 새로 이사한 집을 정리하다가 초인 종이 울리자 남편 에마드인 줄 알고 미리 현관문을 열 어둔 채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간다. 이때 라나는 의 문의 남성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는데,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끝에 에마드가 찾아낸 진범이 바로 노인이다. 노 인은 에마드의 추궁에 대답을 회피하며 시간을 끌다가 결국 아후를 찾아갔다가 의도치 않게 라나를 공격했노 라고 실토한다. 에마드는 사실을 알려 망신을 주기 위 해 노인의 가족을 불러들이고 노인은 필사적으로 에마 드에게 함구를 부탁한다. 마침내 노인의 아내와 딸, 그 리고 사위 마지드까지 도착하고 에마드는 고민 끝에 사 실을 말하지 않지만, 장시간을 대치하며 버티던 노인은 지칠 대로 지쳐 계단을 내려가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에마드는 노인의 죽음과 그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범인을 찾기 이전보다 더욱 착잡한 감정을 느낀다. 희곡 속 윌리가 낯선 여인 프란시스와 일탈한 잠깐의 순간이 윌리 인생이 비극으 로 전환되는 계기로 작용했듯이, 아후를 찾아갔다가 낯 선 여인 라나에게서 욕정을 느꼈던 잠깐의 순간이 노인 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연극과 영화의 상호작용, 재매개 양상은 매우 다양해 서 사례를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세일즈맨의 죽 음』과 <세일즈맨>은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면이 있다. 단순히 희곡을 영화로 옮기거나 연극 공연을 소재로 한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측면이 있다. 거의 연관성이 없 어 보이는 연극 공연과 주연 배우 부부의 삶은 묘한 지 점에서 교차되고 원작의 주제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되 어 관객과 마주한다. 영화에서는 3개의 연극 장면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윌리의 큰아들 비프가 아버지의 외도를 목도하는 것으 로, 영화에서는 노인의 일탈과 조응된다. 윌리의 외도가 그랬듯 노인의 일탈도 사실 그들의 인생에서 의미가 없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은 희곡에서는 윌리와 아들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고, 영화에서 에마드는 아 버지뻘 되는 노인을 죽음으로 내몬다. [10] 인간의 삶에 서 작은 오점일 수 있는 일이 큰 비극을 불러오는 결과 를 두 작품 모두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연극 장면은 윌리가 찰리 사무실을 방문해 서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는 모습이다. 희곡에서 윌리 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노인이고 찰 리는 세파에 올라타 성공한 윌리의 동료이다. <세일즈 맨>의 연극 공연에서 윌리를 연기하는 에마드는 찰리 를 연기하는 바박에게 사적인 감정을 실어 각본에 없는 인신공격을 한다. 전 세입자 아후에 대해 아무 설명 없 이 집을 빌려준 바박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이 다. 세 번째 장면은 윌리의 장례식으로, 영화 속 연극에 서는 원작에 충실한 무대를 구성한다. 영화는 희곡의 엔딩에 한 씬을 덧붙였다. 노인의 죽음으로 관계에 균 열이 생긴 에마드와 라나가 다시 분장실에 앉아 있다. 둘 다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와 린다를 연기하기 위해 분장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노인의 죽음과 분장 실 모습 사이에 있었던 일은 설명되지 않은 채 영화는 말없이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추며 끝난다. 닫힌 결말의 20세기 희곡을 열린 결말의 21세기 영화로 변주한 장면 을 보면서 관객은 두 작품의 의미를 반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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