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홀한 정사 >
N은 민완 수사관이다.
그는 경찰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숱한
사건을 해결했다. 그런데 해결하고도
석연치 않은 사건이 몇 건 있었다. 그 몇
건 중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의 발단은 설 교수의 실종
수색원부터였다. 수색원을 낸 것은 설
교수의 부인 성 여사였다. 그녀는 50대의
여류 사업가로 건장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검은 빛깔의 옷이 그녀를 근엄한
인상까지 안겨 주었다. 마음의 변화를
별로 없었다.
그녀의 평탄하나 정확한 말에 의해
진술된 실종의 경위는 이러했다.
설 교수는 여름 방학 초에 아무런 말
없이 집을 나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전에도 흔히 있었기 때문에 별 걱정을
안했다. 그런데 방학이 끝나고 9월
중순께가 되었는데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성 여사는 그가 곤충채집하러 갔으려니
생각했는데, 대학이 개강했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이곳저곳 수소문했으나,
행방이 묘연해서 수색원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설 교수는 유명한 곤충학자였기
때문에 여름 방학 때는 으레 곤충채집하러
간다는 것이다.
말하잖구 가셨을까요?"
N이 수상쩍어 캐물었다.
"그이는 늘 그랬답니다. 곤충채집뿐만이
아니라, 겨울 방학에도 연구논문을
작성한다고 곧잘 행방을 감추곤 했지요."
"왜 그러셨을까요? 댁엔 서재도 있을
텐데......."
"서재야 있지만, 집에서 하게 되면
손님도 오게 되고 따라서 자연히
번거로워지니까 그런단 거였어요."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방학
때마다 행방을 감춘다는 건 다른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요?"
"글쎄요......."
하고 성 여사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녀는 애써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 속의 동요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짐작되는 일이라도 없습니까?"
"......."
이번에는 처음부터 입을 다문 채였다.
N은 그 일을 더 캐묻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되어 잠시 잠자코 있었다.
대답하는사람에게 거부반응이 있을 때
집요하게 질문하면 더욱 거부반응을
조장시켜 도리어 손해를 본다는 것을 N은
오랜 수사관 생활로 터득하고 있었다.
"딴 방학 땐 방학이 끝나면 곧
돌아오셨나요?"
N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네, 그이는 학교 강의에
충실했으니까요."
"지난 겨울 방학에도 그러셨나요?"
"지난 겨울 방학 땐 어디 가 계셨는지
모르시나요?"
"네, 전혀......."
그러나 N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전혀 모른다고
딱 잡아떼지만, 적어도 짐작은 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대학에선 교수님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나요?"
"모를 거예요. 그이는 그런 얘길
학교에서 할 리 없고, 나도 또한 안
했으니까요. 이번에도 몸이 불편해서
강의를 못하는 걸로 학교에 알리고
있답니다."
"동료 교수님 중에서 특히 가까이 지낸
분은 없으신가요?"
가까이 지낸 분이라곤 없지만...... 맹
교수와 더러 술을 같이한다는 말을
들었지요."
![](https://blog.kakaocdn.net/dn/bszy6M/btrJhkCjUwg/AOeRMpGt1panBcAiFgUue1/img.jpg)
N은 XX대학으로 맹 교수를 직접
찾아갔다. 학자 타입이라기보다도 그는
반백의 머리를 한 단정한 얼굴의 신사
타입이었다. 감청색 신사복을 입고, 검은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연구실에서 N을
맞이한 맹 교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짐작되는 일이라곤 없습니다만...... 설
교수는 뭣인가 걱정이 있는 듯했어요."
"무슨 걱정이었는지 모르시겠습니까?"
않는 성격이라서...... 게다가 이쪽에서
시시콜콜 물으면 역겨워했으니까 알 도리가
없지요. 그런데......."
하고 맹 교수는 약간 망설이는 눈치였다.
아마 이 얘기를 해야 좋을지, 안해야
좋을지 가늠하는 듯했다. N은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냉큼 말했다.
"그런데 뭣입니까? 하찮은 일이라도
수사에 큰 도움이 되는 수가 흔히 있으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맹
교수님께 폐가 되도록은 하잖을 테니까요."
그러자, 맹 교수는 입가에 쓴 웃음을
띄고 씁쓸하게 말했다.
"수사관의 눈이라더니, 참 잘 보는군요.
실은 난 맘 속으로 이런 하찮은 일을
말했다가 괜히 내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나
"웃음거리가 되다뇨.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말해 보십시오."
맹 교수는 입가의 잔웃음을 말끔히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방학 좀 전의 일입니다만...... 둘이
홀에서 맥주를 했었지요. 그때 설 교수는
맥주잔에서 꺼져가는 거품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거품이야, 한갓 거품이야......
하고 중얼거리더군요. 그래 내가 뭣이
말인가? 하고 물어봤더니 설 교수는 갑자기
제 정신이 든 듯 날 멀뚱히 쳐다보는
것이었지요. 그러더니 엉뚱하게 요즘
여자가 결혼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고
묻질 않겠습니까?"
"결혼 비용을?"
N은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아서 긴장하며
"그래, 난 왜 그러나? 누가 결혼하는가?
하고 물었지요. 내 알기에는 설 교수에겐
두 딸이 있지만, 이미 결혼해서 미혼의
딸은 없으니까요. 그랬더니 그는 암 것도
아냐 하고 얼버무리려는 듯이 맥주를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키더군요."
맹 교수는 그때의 광경을 연상해서인지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교수님께선 비용이 얼마나
든다고......?"
"대답을 못했습니다. 도대체가 나도
적령기 딸이 없는 만큼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없는 판이라 알지 못했거든요. 실제
문제로......."
"그밖에 또 딴 일은......?"
"별로 생각이 안 나는군요. 도대체
그날 얼큰해서 한 노래가......."
"노래?!"
"네, 설 교수는 말수가 적은 대신 술에
취하면 노랠 곧잘 했답니다."
"어떤 노랩니까?"
"대개 유행가지요. 더러는 명곡도 하지만
대개는 옛날 유행했던 유행가
나부랭이거든요."
N은 거나하게 취한 설 교수가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광경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무엇인가 간지러운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철학 교수가 텔레비전의 저속한
코미디 프로를 열심히 본다는 동료
수사관의 말이 생각나 한번 씩 웃었다.
그러자 맹 교수도 한번 덩달아 씩 웃고
말을 이었다.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습니다. 가사도
그렇고 곡도 그렇고......."
"어떤 노랜지 알았으면 하는데요."
"네, 알려 드리지요. 내게 그 노래의
가사를 적은 게 있습니다."
하고, 맹 교수는 책상 서랍 속을
뒤적거렸다. N은 부쩍 흥미를 느껴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는 네모 반듯한 메모지에 적은
가사를 N에게 건네 주었다. 섬세하고도
묘한 글자 모양으로 젊은 여자의 글씨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건 누가 쓴 겁니까?"
"그걸 나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하고 N은 상대가 모른다면 더욱 파고들고
기쓰고 물었다.
"이 메모지가 어떤 경로로 교수님 손에
들어왔는데요?"
"물론 설 교수한테서 받았습니다. 내가
그때 잔잔하면서도 애수어린 그 노랠
좋다고 하니까, 그는 속 호주머니에서 이
쪽지를 꺼내 주며, 좋으면 배우라는
거였지요."
"그때 누가 쓴 거란 말은 없었던가요?"
"네, 나도 여자 글씨 같아서 좀 알고
싶어 물어봤으나 그는 고개를 조용히
내두르며 구슬프게 이 노래만 하더군요."
N은 약간의 망설임 끝에 물었다.
"교수님은 이 노랠 할 수 있습니까?"
"가사를 보면서 하면 비슷하게 할 수
있을는지....... 그날 설 교수가 워낙 몇
익은 셈이지요."
N은 또 약간의 망설임 끝에 청했다.
"교수님, 그 노랠 해주실 수 없을까요,
실례일지 모르지만....... 작은 소리라도
좋으니까요."
"그러지요. 설 교수의 수사상 필요해서
그러실 텐데......."
"물론입니다. 이 노래와 결혼 비용을
물은 거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실은 나도 언뜻 그런 생각이 들어
얘기한 겁니다. 그럼, 기억나는 대로 작게
불러 보지요."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퍽이나
밝은 목소리였다. N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메리퀸 밤 항구의 창문을 열어놓고
쓰라린 이별마다 쓰디쓴 담배연기
길게 뿜는 메리퀸 저 부두에서
떠나가는 아메리칸 상선에 매달려서
느껴 울던 그 추억을 바다 위에 버려야지
메리퀸 메리퀸 메리퀸
로맨스 로맨스 로맨스
메리퀸 밤 항구에 쌍고동 울 적마다
하룻밤 풋사랑에 술취한 마도로스
길게 뿜는 메리퀸 카바레에서
트위스트 춤을 추던 그 기쁨에
기다리던 그 날짜를 미련없이 보내야지
메리퀸 메리퀸 메리퀸
로맨스 로맨스 로맨스
"트위스트 춤이 나오는 걸 보면 내가
젊었을 무렵의 노래 같은데, 가사나 곡이
전혀 생소하군요."
맹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겁니다. 나도 그때 생소해서 설
교수에게 물었더니, 이 노랜 일반 대중에게
유행한 노래가 아니라 항구의 선원들이나
그 둘레 사람들에게만 유행한 노래라고
들었다는 얘기더군요. 그래, 내가 그 얘긴
누구한테서 들었느냐고 재우쳐 묻자 그는
그 물음엔 대답하지 않은 채 맥주잔만
기울였지요."
맹 교수와 헤어진 N은 성 여사를 출판사
직원들이 일에 골몰하고 있는 편집실을
지나 사장실에 안내되었다. 사장실 벽에는
곧 발간될 20권짜리 전집물의 예고 선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성 여사는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으며, 그렇다고 또한 별로 싫어하는
기색도 없이 N을 맞이했다. 그리고 덤덤히
N의 말을 기다렸다. 여자 사환이 날라다
주는 커피를 든 다음 N은 그녀를 똑바로
보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주인 양반은 어떤 젊은 여자하구 자취를
감춘 것 같습니다."
성 여사는 잠자코 있을 뿐이다. N이
일부러 '젊은 여자'란 말을 강조해서
말했는데도 그녀가 저렇게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욱
자극적으로 그 노래가 적힌 메모지를
내보이며 넌지시 말했다.
"바로 이 노랠 적은 여자지요."
그래도 성 여사는 여전했다. 약간
초조로움을 느낀 N은 짐짓 흥겨웁게 그
노래 1절의 절반을 노래하고 나서 물었다.
"부인은 주인 양반이 이 노랠 흥얼거리는
걸 들은 적이 없습니까? 그 여자한테서
배웠을 텐데요......."
"그이는 집에선 일체 노랠 안합니다.
물론 내가 하게 하지도 않겠지만......."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 단호하고 너무나
생각이 들었다.
"주인 양반은 그 젊은 여자하고
어디에선가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틀림없이......."
아무리 무표정하다 해도 그녀는 역시
여자였다. 동거생활이란 말에 즉각적인
반응은 아니지만, 완만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먼저 N에게 가벼운 업신여김의
눈길을 보내고 나서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그렇지가 않아요."
"왜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이는 죽었을 거예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성
여사의 태도에 N은 처절한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 여자하고 정사(情死)했단 말입니까?"
하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내두르더니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이는 혼자 자살했을 거예요."
"무슨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는 가요?"
"예감이지요."
그러나 그녀의 말눈치는 예감이 아니라
무엇인가 근거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N은 그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그 결과 성 여사는 동곳을 빼고
드디어 설 교수가 써놓고 갔다는 쪽지를
보여주었다. 그 쪽지에는 단지 한마디
'차디찬 미이라'라고 쓰여 있었다. 원래 설
교수는 이런 식의 간단한 메모를 즐겨
한다는 것이었다.
N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차디찬 미이라란 무슨 뜻인가요?"
죽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N은 아무래도 납득이 안 갔다.
"글쎄......그렇겠지만, 왜 하필이면
더운 여름에 차디찬 미이라라고 했을까요?"
성 여사는 입을 야무지게 다물었다.
"짐작되는 일이 전혀 없습니까?"
"전혀 없어요!"
N은 다시 맹 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여전히 N을 정중히 대했다. 그리고 N이 그
쪽지를 보이고 짐작되는 일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네...... 언젠가 설 교수가 나한테
말하더군요. 정채봉이란 작가의 <어른을
위한 동화>였지요. 얘기인즉은 늘 눈이
아랫마을에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나타났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산에서
떠내려오는 얼음의 내(氷河) 언저리에서
무엇인가 골똘히 기다리느라고 몇십 년이
흘러 그녀의 젊음은 고스란히 사라지고
어느덧 할망구가 됐다는군요. 그래도 마냥
기다리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맹 교수는 짐짓 뜸을 들이는 듯 말을
멈추었다. 궁금한 나머지 N은 성급히
물었다.
"그게 무엇이었나요?"
"......꽁꽁 얼은 젊은이의
사체였답니다. 그게 바로 그녀의 남편인데,
그가 그 높은 봉우리에 오르다가 조난을
당했다지 뭡니까. 그 사체가 눈 속에
사체 아래층이 얼음이 되어 얼음의 내로
미끄러져 흘러가는 통에 결국은 그 사체가
맨 아래층에 이르러 드디어 얼음과 더불어
미끄러져 흘러 내려온 거랍니다."
"그야말로 차디찬 미이라군요."
"그렇지요. 설 교수는 할망구가 젊은
남편의 사체를 끌어안고 우는 광경이
얼마나 애틋하고도 로맨틱하냐는
거였거든요. 설 교수는 그런 낭만적인
일면도 있었답니다."
N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설 교수가 그런 높은
산봉우리로 올라갔다는 말이 되나요?"
"아닙니다. 그가 곤충채집하느라고 얕은
산에 오르긴 했지만, 높은 산엔 오르지
못했지요. 전혀 등반 기술이 없었거든요."
그때 문득 생각난 듯 맹 교수가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참! 그러고 보니 차디찬 미이라와
관계되는 일이 있어요."
"그래요! 뭡니까?"
"설 교수가 곤충채집하러 다니다가
희한한 곳을 발견했다는군요. 그곳은
조그만 굴인데, 그 속이 어찌나 추운지
땡볕이 쨍쨍한 여름에도 꽁꽁 얼
지경이라지 뭡니까."
"거기가 어디랍니까?"
"그건 나도 모릅니다. 설 교수가
자기만의 비밀이라고 일러주지 않더군요."
N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넌지시
물었다.
"그곳 얘기를 할 때 또 다른 얘기는
맹 교수 역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대답했다.
"그 근처에서 흰줄무늬 나비라는 희귀종
나비를 채집했다는군요. 참, 그 굴도 그
흰줄무늬 나비를 뒤쫓다가 넘어져
발견했답니다."
N은 곤충학자를 찾아가 자문을 얻은
결과, 흰줄무늬 나비는 전라북도
○○지방에서만 서식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N은 즉시 그곳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런 굴이 있는 곳을 알아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정말
막연한 일이었다.
나섰다. 설 교수가 흰줄무늬 나비를
뒤쫓다가 넘어진 곳에서 그 굴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근거로 해서 우선
흰줄무늬 나비를 찾아 나섰다. 그 나비는
곤충학자한테서 자문을 얻을 때, 그 표본을
보아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나비는 희귀종이라서 그런지
좀체로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비가
많이 있는 곳으로 알려진 매바위 근처를
헤매 다녔다. 나비를 뒤쫓다가 넘어졌다는
것으로 미루어 지형이 평탄하지 않은 곳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런 곳으로
찾아다녔다. 한참동안 그러고 다니다가
돌로 울퉁불퉁한 곳에 이르러 걷기조차
몹시 불편했다. 이런 데를 달리자면 곤충
뒤쫓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도 넘어질
그리하여 N은 그 근처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자 덤불로 앞이 가려져 찾기 힘든
위치에 굴 같은 것이 약간 보였다. N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급히 그 굴
앞으로 다가갔다. 가보니 겨우 사람 둘
정도가 드나들 만한 조그만 굴이었다.
얼굴을 디밀으니 찬 기운이 확 끼쳐왔다.
N이 플래시로 안을 밝히자 설 교수로
보이는 남자의 사체가 러닝셔츠와 팬츠
바람으로 반듯이 누워 있었다. 그 옆에
연회색의 여름 양복이 있었다. 그리고
5분의 1쯤 양주가 남은 양주병과 술잔이
딩굴어져 있었다.
굴 안은 차디차 사체는 조금도 부패되지
않은 채 있었다. 흡사 영안실의 냉장고에
넣어둔 것과 같았다.
감식반의 감식 결과, 목을 두 손으로
눌려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또 여자와 육체적 교섭이 죽기 전에 있었던
것도 판명되었다. 그러니까 여자와
정사(情事)를 하고 나서 곤히 잠든 그의
목을 그녀가 졸라 죽이고 도망쳤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양주병의 지문을 채취한 결과 설 교수의
지문 외에 또 딴 지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지문을 지문대장과 대조한 결과, 그
지문의 장본인이 바로 XX맨션 아파트에서
신혼의 행복에 부풀어 있는 신 여인임이
판명되었다.
그녀는 26세의 육감적인 여자였다.
몸집은 작은 편이었지만, 오동통하고
살결이 희뿌얘서 인물이 한결 돋보였다.
적은 필적과 일치했다. 다만 글씨 위에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진 자국을
빼고서는.......
신 여인은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자신이 목을 졸라 죽였다고.......
정사중에!
그러나 그것은 설 교수의 성화 같은
요청에 의해 그랬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자신은 자살 방조죄는 해당될지 몰라도
살인죄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의 말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설 교수 필적의 한
뭉치 원고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그녀가
소중히 간직한 것이었다.
그 원고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남미에 살고 있는 타란튤라란 독거미는
수놈이 암놈에게 구애(求愛)할 때 춤을
춘다. 여덟 개의 다리를 교묘하게 움직여
가며 춤추는 모양은 가히 볼 만하다.
그러나 이 춤은 결코 즐겁거나, 흥에
겨워 추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자칫
잘못하면 암놈에게 잡혀 먹히니까,
그야말로 결사적인 구애의 목숨을 건 춤인
것이다.
또한 역시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전갈(全蝎)은 교미가 무르익으면 암놈이
수놈을 여러 토막으로 토막내어 유유히
먹어치운다. 우리 나라 사마귀는 더욱
처절하다. 교미에 열을 올리고 있는 수놈을
암놈은 쓰러뜨린 다음 머리 쪽으로부터
잡아 먹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수놈은
정사는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다.
아, 인간도 이런 황홀한 정사를 할 수만
있다면....... 아니, 나도.......
신 여인이 설 교수를 만난 것은
선원이었던 약혼자가 항해 중에 병사해서
상심에 빠졌던 때였다.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몰래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설 교수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녀를 결혼시킬 결심을 했다.
물론 둘의 동거생활 때문에 빚이 꽤 많아진
것도 그 결심의 동기였지만.
부인은 그들의 동거생활을 대충 알고
있었다. 설 교수가 빚을 갚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거절한 바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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