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끼 >
밀가루 장사를 하면 바람이 불어 제끼고
소금장사를 할라치면 비가 쏟아진다더니
내가 바로 그짝이 날 모양이었다.
옛말 하나도 안 그른 것처럼 나의 불운은
어느 날 갑자기 슬그머니 시작되었다.
그날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아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고 하는 편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경영하고 있는 한강유통주식회사의
붐볐다. 업계에서 짭짤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회사인 만큼 평소에도 고객들로
붐비는 편이었지만 매장은 그날따라 유독
북적거리는 듯했다.
내가 거래처를 한 바퀴 돌아보고 회사로
돌아온 시각이 오후 여섯 시 무렵,
영업마감 시각이 임박한 매장은 한층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황 전무가 각 코너를 부지런히 돌며 결산
준비를 서두르는 모습이 첫눈에 들어왔고,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직원들의 애교스런 미소들도 나의 마음을
흡족케 했다. 모두들 나의 영업 방침을
충실히 지키는 셈이었다.
고객은 왕이다.
나의 모토는 가장 평범한 진리에서부터
입사 첫날부터 인사하는 법과 애교있는
미소를 띠는 방법을 배우느라 금방
진저리를 치게 되지만, 나의 집요한 교육
덕택에 이제는 모두 웃음을 입가에 달고
다닐 정도가 되었고 눈웃음과 애교띤
미소는 거의 생활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나에게도 이미 상품화된 웃음을
예사롭게 선사하곤 했다.
방금도 그랬다. 내가 매장으로 들어섰을
때 직원들은 몸에 밴 미소로 반겨 주었고
나 역시 익숙한 웃음으로 격려를 마지
않았다. 나는 매우 흡족함을 느꼈다. 아직
총각이어선지는 몰라도 여직원들 사이에선
내 인기가 제법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나는 늘상 느꼈다. 상품화된 미소 뒤쪽에는
언제나 은근한 부러움과 존경심이 담긴
나 스스로도 그러한 나의 위치를 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맨손으로 엄청난 부를
창출한 청년 기업인, 총각 사장. 언제나
나를 따라 다니는 꼬리표는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는 듯한 쾌감을 항상 동반하고
있으므로.
매장은 늘 활기에 차 있었고 나는 그
활기를 즐겼다. 회사를 들어오고 나갈 때
매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은 그래서
버릇이 되어 있었다.
오늘도 유별난 상황은 눈에 뜨이지 않는
듯했다. 단지 숙녀복 코너의 최순영 양이
오래도록 전화통을 붙들고 있어서 나의
신경을 건드린 것밖에는.
얼핏 짜증스런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전화 상대는 그녀의 남자친구인 하동우라는
프로포즈는 이제 회사 안팎으로 소문이 나
있어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대충 매장을 둘러본 후
이층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나의 불운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나의 집무 책상에 놓여
있는 낯선 사각봉투를 발견한
순간부터였다.
청첩장인가? 누가 결혼이라도 하나보지?
무심코 봉투를 개봉하여 내용물을 읽던
나는 소스라치듯 놀라고 말았다.
양승일 사장 친전.
젊은 청년 실업가로서 재계의 촉망 아래
순탄한 부를 쌓아올리는 귀하의 행운에
우선 축복을 보냅니다.
된 데 대하여 깊은 양찰 있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군지는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나는 엄연한 당신의 업보라는
사실만은 알려드립니다. 당신이 딛고
올라선 업보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본인의
처지를 양지하시고 다음 요구사항을 필히
이행하실 것을 촉구합니다.
1. 나에게 위로금조의 보상금 1억 원을
내일까지 준비하십시오.
2. 이 사실은 당신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할 것이오.
만일 경찰이 냄새를 맡게 된다면 당신은
철저하게 파멸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내 말을 믿든 안 믿은 그건 당신의
내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그 첫번째
증거를 보여 드리겠소.
나는 급히 인터폰을 눌렀다. 그리고 몸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오르는 전율과도 같은
흥분을 가만히 억눌렀다.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황 전무가
허겁지겁 방으로 뛰어들었다.
"부르셨습니까?"
인터폰을 통해 심상찮은 나의 기색을
감지한 듯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억양을 한껏 낮추어
말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누가 내 방에
들어왔습니까?"
"예?"
누구요?"
나는 조용히 봉투를 내어밀었다.
"글쎄요. 전 계속 매장에서......."
황 전무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편지를 읽어 보세요."
내용물을 읽어 내려가던 황 전무의
안색이 대번에 일변했다. 나는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렸다가 붉게 변해가는 그의
표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니, 이건? 사장님......."
"우선 지금 즉시 전 매장의 문을
닫읍시다."
"아직...... 마감 시간이 남아
있는데요?"
"서둘러야 합니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해놓았을지도 모를 테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황 전무는 말을 더듬었다. 어지간히
당황한 듯 그는 흥분의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내 방을 뛰쳐나갔다.
나는 침착해야 한다고 자신을 달래면서
소파에 몸을 묻은 채 내가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을 가만히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사장님! 숙녀복 코너인데요. 손님이
금방 찾으러 온다고 맡겨둔 물건이
있는데요."
숙녀복 코너의 최순영이었다.
"무슨 물건입니까?"
"내용물이 뭔지는 모르겠구요. 우리 회사
포장지로 된 큼직한 상자에요. 아마 여기서
즉 손님이 맡겨둔 물건의 처리를 묻는
모양이었다.
"미스 최가 무슨 물건인지를 살펴봐요.
뜯어보고 값나가는 거 같으면 다시
포장해서 내 방에 보관하도록 하고."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일분 가량
지났을까? 나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급박한 비명소리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매장에 뛰어내려 갔을 때 매장에는
매캐한 내음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고 바닥에는 숙녀복 코너의 최순영과
민옥지가 나뒹굴고 있었다.
언제였습니까?"
타이프로 또박또박 찍혀 있는 편지를
한참이나 검토하던 도 형사가 이윽고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폐점하기 삼십 분 전이니까...... 여섯
시 반쯤 될 겁니다."
"오늘 이 방을 비우신 건 얼마나?"
"오후 내내 비어 있었어요. 저희들 각
체인의 월례회의가 있어놔서요."
"제가 여기를 들어오면서 잠깐
살펴봤는데 외부인은 이 방의 침입이
어려워 보이던데, 내부 사정에 밝은
자라거나 내부의 소행...... 이런 생각은
안 드십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도 형사는 내가 가장 꺼리는 쪽으로
했다.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낯선 사내
하나가 비죽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
형사가 반기며 그를 맞아들였다.
"아, 반장님. 이분이 양승일
사장이시고...... 저희 반장님이십니다."
사내와 악수를 나누면서 나는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시경 강력계의 순삼수
반장. 그의 소개를 들으면서 나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형사반장이라면 얼핏 형사
콜롬보의 허술한 모습이나 바바리 코트
차림의 노회한 장년 사나이를 연상하기
일쑤였는데 눈앞의 반장은 그렇지 못했다.
말쑥한 양복 차림에다 손 반장은 뜻밖에도
아직 젊은 나이로 보여 더욱 그랬다.
어쨌든 도무지 형사반장답지 않은 그런
모습이 나에게 일말의 안도감과 친근감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결단을 내리고 신고를
해주셔서요."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저희들이 해야죠. 범인을 잡을
때까지 우리 용기를 내어서 한번
해봅시다."
그는 겸손한 미덕을 한껏 내보여 나를
더욱 매료시켰다.
"도 형사, 문제의 그 폭발물 조사해
봤나?"
"네. 바로 이겁니다."
도덕록 형사가 현장에서 수거해와 내
집무책상 위에 늘어 놓았던 폭발 장치들을
집어들었다.
"이게 문제의 시한 발화장치인데요. 여기
자명종 시계와 9볼트짜리 건전지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 성냥뭉치와 황이 있고
휘발유 기름걸레와 휘발유 2리터가 비닐
봉지에 담겨 있었습니다. 아마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발견한 사람은 물론
이 건물은 완전 전소될 뻔했습니다. 더구나
장소가 의류 판매장이었으니까요."
"범인은 그 점까지 계산에 넣었을 테지."
"범인이 맞춰둔 시각까지 가지 않고
조기에 발견된 게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그 시각이 몇 시에 맞춰 있습니까?"
"열두 시 정각입니다."
나는 깊은 신음을 토해내었다. 그것은
정확하게 범인이 예고해 두었던
시간이었다.
"범인은 만약을 생각해서 뚜껑에도
합선이 되어서 터질 수 있게 말입니다."
"그렇다면......왜 폭발이......."
나는 못내 궁금하던 부분을 물어보았다.
"성냥뭉치의 황까지는 발화되었는데
휘발유 봉지가 터지지 않은 건 상자 내부가
너무 밀폐되어 있어서 산소 부족으로
불길이 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천만다행이라는 거죠."
나는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쉬었다.
그제서야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의문이
일시에 풀리는 듯했다.
"근데 도 형사, 이 자명종 시계 이거
국산 아니잖아?"
"네, 이탈리아젠데...... 아 여기 글씨가
있는데요."
"어디...... 증, 서일제약주식회사?"
그들은 내가 미처 느끼지도 못했던
부분에서부터 수사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손 반장은 이번엔 피해 당사자인
최순영과 민옥지를 불러들여 당시의
정황진술을 들었다.
미스 최와 미스 민은 다행히도 손과
얼굴에 가벼운 화상과 찰과상을 입은
정도라 손에 붕대를 감고 볼에 파스를 붙인
정도로 응급처치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놀라움이 채 가라앉지 않은 듯
그녀들로부터의 정황청취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 좀 생각해 보세요. 기억을
더듬어서요. 물건을 맡기는 손님이니
특이해서 인상에 남을 텐데요."
"글쎄요......."
곤혹스런 얼굴을 풀지 않고 있었다.
"폐점 직전이라 무척 붐볐어요. 때마침
미스 최를 찾는 전화까지 걸려와서 제대로
살펴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정황청취는 미스 민의 보충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https://blog.kakaocdn.net/dn/bh0xS2/btrJk3Nm0r4/tkCucLkk6oU8n1jQ89AH6k/img.jpg)
수우트 케이스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는 연신 담배만 빨아댔다.
광화문의 번화가에 면해 있는 황실
그릴은 제법 분위기있는 실내장식으로
깔끔한 느낌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운치있는 분위기도 나의
무료하고 들뜬 감정을 가라앉히지는
구석자리에서 초조하게 담배만 축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벌써 세
번째 장소로 이동된 오늘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끝날 것 같았다.
범인과의 접선을 위해 나는 현금이 가득
채워진 수우트 케이스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경찰의
제지로 중단되고 말았다. 비록 범인의
요구에 응하는 체하고 접선에는 응하되
진짜 현금을 건네주어선 안 된다는 것이
경찰의 완강한 방침이었다.
나는 결국 나의 주장을 철회하고 신문지
조각을 가득 채운 수우트 케이스를 들고
약속 장소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첫번째 장소인 사직공원 주변에는
아베크족으로 위장한 남녀와 땅콩 리어카를
변장한 형사들이 삼엄하게 나를 호위하며
깔려 있었음도 물론이다.
그러나 인근의 신문배달 소년으로부터
약속 장소를 변경한다는 쪽지를 건네받은
후 영동의 호텔 커피숍으로 달려갔다가
다시 광화문의 활실 그릴로 옮겨진
지금까지 범인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나는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막연한
예감이 나의 조바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렇게 30분 가량이나 더 지났을까? 나는
결국 황실 그릴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회사로 돌아온 나는 집무책상에 틀어박힌
채 갖가지 착잡한 상념에 젖어 있었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의욕도
방향감각을 상실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쩐다? 웬지 몰랐다.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는 자신감마저 잃어버린 듯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손삼수 반장이 나의 방을 찾은 것은 내가
심란한 마음 가닥을 바로잡기 위해 낙서를
휘갈기고 있을 때였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십니까?"
그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이구, 어서 오십시오. 이리
앉으세요."
불쑥 찾아온 그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 나는 자리부터 권했다.
"사업가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죠?"
"예?"
보니 말입니다."
"일은요....... 낙서를 갈겨대던
중이었습니다."
"낙서요?"
"제 버릇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리곤 할
때 낙서를 갈겨대면 속은 좀 풀리거든요."
"아, 네......."
나는 씁쓰레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담배를 권하고 불을 붙여 주었다.
"접선이 실패했다면서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그는
그제서야 본론을 꺼내 놓았다.
"네. 두 시간이나 기다렸었는데...... 더
이상 연락이 없었습니다."
나는 허공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내었다.
"음......."
"......."
나는 이번 작전의 실패가 당신들
때문이라는 원망이 담긴 눈길로 손 반장을
쏘아보았다. 그는 눈길을 내리깔고
묵묵부답이었다. 방안엔 잠시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손 반장이 이윽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솔직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나는 똑바로 그를 쳐다보았다.
"양 사장님,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입술을 꼬옥 물었다.
"어떤 일이라도 좋아요. 비밀은
주세요. 양 사장님은 지금 누군가에게
위협을 당하고 계십니다. 양 사장님뿐만
아니라 이 사업체까지 말입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하게 금품을 뺏기 위한
협박으로만 보긴 어렵습니다."
"......."
"제 생각으로는 금품보다는 누군가가 양
사장님께 앙심을 품고...... 심하게 말해서
양 사장을 몰락시키려는 심뽀를 가진 자의
소행으로 보여진다는 겁니다."
"......."
"협조해 주세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윽고 나는 입을 열었고, 그는 나을
빤히 바라보았다.
"믿지 않으셔도 할 수 없죠. 하지만
이번엔 그가 침묵을 지켰다.
"젊은 나이에 이만한 사업체를 거느릴 수
있게 되고 유통업계에서도 발언권이 있을
정도로 기반을 닦은 것은 제 수완과 운이
좋다고도 볼 수 있겠죠.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남의 피눈물을 뽑아낸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수긍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몸을 막 일으킬 찰나였다.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 벨이 그의 동작을 중단시켰다. 나는
천천히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한강체인입니다."
"양 사장!"
수화기 저쪽에서 컬컬한 사내의 목소리가
보냈다. 날쌔게 몸을 일으킨 손 반장은
집무실 책상으로 달려가 그쪽 수화기를
가만히 집어들었다.
"누구십니까?"
"왜 내 말을 안 들었어?"
"여, 여보세요......."
"경찰엔 알리지 말라고 했잖아!"
"무슨 소리요? 그건 오햅니다."
"닥쳐!"
"여, 여보세요."
"이건 당신이 자초한 일이야. 뜨거운
맛을 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보여주지."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온몸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듯한 나른함을
느끼며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다. 손 반장은
심각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기만 할
그리고 내가 최순영의 피살 소식을 접한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내가 전화 연락을 받고 사건 현당인
최순영의 집앞에 당도했을 때 현장은 이미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형사기동대 마이크로 버스와 페트롤 카,
그리고 감식반 차량이 도착해 있었고
일대는 밀려드는 인파로 수라장이었다.
내가 인파를 헤집고 안으로 뛰어들자 마침
최순영의 방에서 나오던 손 반장이 나를
맞아들였다.
"무슨 일입니까? 미스 최가 왜?"
나는 하소연이라도 하듯 손 반장의
뜻밖의 사태에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당장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 듯 손 반장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일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또 무슨
사건이 터질는지...... 이래도 양 사장님은
입을 다물고 계실 겁니까?"
"내가 뭘 숨기고 있다는 거요?"
"협조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티끌만한
거라도 알아내야 합니다."
"......."
"저는 확신합니다. 사장님께 누군가
원한을 품을 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우린
그걸 알아야 합니다."
손 반장은 나에게 질책이 담긴 눈길을
던졌다. 그러나 나는 할말이 없었다.
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 따위가 사실
손 반장은 크게 난관을 느끼고 있었으나
수사는 여러 갈래로 진척이 되고 있음을 도
형사르르 통해 이따금씩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첫번째 방향은 물론 나에게 협박장을
보낸 인물이 지난번 사제폭탄 불발 사건을
일으켰고, 이번 최순영 살해사건과
동일범이라는 확신 아래 나와 원한관계가
있을 법한 인물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처음엔 원한관계 따위가 있을 리 없다는
나의 진술에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던 손
반장도 차츰 나의 진술에 담긴 진실성에
공감을 하는 눈치를 보였다. 사실 수사력의
대부분을 집중시켜 나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를 발가벗기듯 해부해
보았으나 그들의 수사망에 걸려든 혐의자나
두 번째는 유일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사제폭탄의 제조원을 찾아내는 일인데,
첫번째 방향이 벽에 부닥친 것과는 달리
이쪽은 약간의 진척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선 사제폭탄에 장치되었던 자명종
시계의 출처를 밝혀냈던 것이다. 문제의
자명종 시계는 2년 전
서일제약주식회사에서 전국의 대리점에
회사 선전용으로 보낸 백 개 중의 한 개로
밝혀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수사는 큰 진전을
본 셈이었다. 일단 수사망이 100분의 1로
줄었다는 것만도 큰 수확인 모양이었다.
세 번째 수사방향은 살해된 최순영의
주변인물에 대한 탐문이었는데, 이쪽에선
최순영의 애인인 하동우가 첫번째 용의자로
듯했다.
그러나 하동우는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나섰다.
"믿어 주세요. 전 아녜요. 제가 왜
순영이를....... 전 안 죽였어요."
"자, 차근차근 얘기해! 자네가 미스 최를
지겹도록 쫓아다닌 건 사실이지?"
"예."
"며칠 전 미스 최 근무처에서 사고가
나던 날 전화를 한 것도?"
"......."
"그리고 바로 그날 미스 최를 미행해서
산부인과까지 몰래 따라갔고 임신
4개월이란 사실까지 확인했다고 자네
입으로 그랬었잖아!"
"그, 그건 사실이에요."
옥신각신했겠지?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겁이 덜컥 난 자네는 순영 양에게 아이를
떼라고 시켰을 테고 미스 최는 책임지라고
떼를 썼을 테고, 안 그래?"
"아닙니다!"
"솔직히 얘기해 봐!"
"그 아이는 제 아이가 아닙니다."
"뭐?"
"사실입니다. 우리 사이는 순수했습니다.
깨끗했어요. 전 순영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 그제서야 모든 걸 깨닫게 되었어요."
"무슨 소리야?"
"요즘 우리 사이는 순탄치 못했습니다.
웬지 몰라도 최근들어 순영이는 절
피했어요. 어쩌다 만나면 헤어지자고
막무가내였어요. 전 순영이가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모든 걸 알았습니다.
순영이는 딴 남자가 있었던 겁니다!"
"그 남자가 누구라든가?"
"말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구슬러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홧김에 죽였나?"
"아니라니까요, 전!"
"자네 옷에 묻은 그 피는 어떻게 설명할
거야? 게다가 자네가 첫 목격자야!"
"아녜요, 이 피는. 다시 한번 설득하려고
순영이를 찾아갔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순영이는 이미 가슴에 칼을 맞고 죽어
있었습니다. 전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고
병원으로 업어 갈려고 했는데...... 그때
묻은 겁니다."
"믿어 주세요. 정말입니다."
첫번째 용의자로 떠올랐던 하동우는
그렇게 수사선상에서 제외되었다. 하동우의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김진봉도 그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하고 나섰다.
"동우 그 자식 정말 순진한 놈이에요.
제가 말예요, 미스 최고 고무신 거꾸로
신었으니 맘잡으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로 미스 최만 철석어럼 믿는
거에요. 또 설사 미스 최가 과거가
있더라도 상관없다는 겁니다. 그런 놈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어쨌든 이렇게 되어 수사는 다시 난관에
부닥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에 나의 신변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한때 위험 수위에서
휘청거릴 뻔했던 사업이 정상궤도로
올라섰는가 하면, 그동안 차일피일
끌어오던 나의 결혼 문제가 확정이 되었다.
결혼 상대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명문세도가의 막내딸이었다.
사실 나의 사업이 일찍 정상수위로
달리고 있는 것도 초기에 그 가문의 은근한
후광이나 영향력에 힘입은 바 컸던 것도
솔직한 사실이다.
어쨌든 최근의 불미스런 몇 가지
사건들만 제외한다면 나는 더 없는
행운아로 순조로운 행진을 계속하는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수사는
거의 미궁으로 빠지기 직전이었고,
수사본부가 해체된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나는 정말 이런 상태가 계속되기를
갈망했다. 한동안 집념에 들떠 있던
형사들의 식어가는 열기를 느끼며 거기에
보조를 맞추느라고 협박자도 더 이상의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나로선 더할 수
없이 좋은 현상이었다.
그러나 아직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일말의 두려움이 완전히 씻겨나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폭풍 전야의 고요처럼
팽팽한 긴장을 남긴 채 나의 마음 속에
앙금이 되어 존재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동안 뜸하던 손 반장이 불쑥 나를
내 마음 속 불안의 존재들을 돌연 일깨우고
말았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마음 속의 앙금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수사는 언제나 끝나겠습니까?"
나는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았다.
"글쎄요....... 노력은 하는데......
통."
그는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요즘 타격이 큽니다. 저희들은......."
"......."
"모든 걸 쉬쉬하며 극비에 붙이는데도
어떻게 소문이 새어 나간 건지......
소문이 한 바퀴 돌면서 손님도 매상도 다
떨어지고 있어요."
"면목 없습니다."
했다.
"아참, 축하드립니다."
"......?"
"곧 약혼하신다는 말이 들리던데요?
상대가 굉장한 분이시라구요?"
"그런 개인적인 사생활도 조사를 다
하십니까?"
"죄송합니다."
그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 미소의 언저리에는 그 특유의
자만심이 얼핏 깔린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요? 요즘은 그놈이
더 이상 연락이 없으니."
"이 정도로 목적달성이 된 건 아닐
겁니다."
"예?"
있으니까 곧 뭔가가 나올 겁니다. 내부
소행이라는 확증도 이미 잡았으니까요."
순간 나는 차가운 전율이 등줄기를
스쳐감을 느꼈다.
"무슨 뜻입니까? 내부 소행이라니?"
"그 협박장 말입니다. 타자기와 글자를
분석해 본 결과 바로 이 회사 내에서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하하...... 두고 보십시오. 저희들의
과학수사 체계를 말입니다. 바빠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러고 손 반장은 총총 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너무나 엉뚱한 발상에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할말을 잃고 있었다. 내부
있을까?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한동안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런 결론이 났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범인이 남긴 협박장은 일상적인 평범한
타자 종이에 타자 글씨가 찍혀 있을
뿐이었다. 타자기는 워낙 보편화되고
대중화된 사무기기가 아닌가. 타자 글씨만
보고 그 문서가 작성된 타자기를
찾아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격이 아니고 또 뭐겠는가?
그러나 손 반장이 너무나 자신있게
내뱉은 한 마디에는 마음 한구석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수사, 손 반장은 그렇게 말했다.
하긴 오늘날처럼 과학 문명이 발달한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범인이
장갑을 끼고 범행을 저지르더라도 지문을
찾아내는 최신기계가 발명되었다고.
그렇다면, 손 반장이 내부 소행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나 역시 그렇게 믿어도 좋을 것이다.
약혼식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식장을 가득 메운 하객들은 진심으로
새로운 커플의 탄생을 축하해 마지 않았고
나는 날아갈 듯한 심정이었다.
오늘은 오로지 나를 위한 날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수많은 귀빈들은 모두 내게
않았다.
그 분위기는 리셉션장으로 계속 이어졌고
나는 신부의 손을 잡고 귀빈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나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객들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점퍼차림의 사내를 보는 순간
나의 표정은 굳어지고 말았다.
분위기에 도통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로
인파를 헤치고 들어온 사내는 바로 손삼수
반장이었던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재빨리 그를 밖으로 끌어냈다. 자칫
꾸물거리다가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급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어보이며 흘끔흘끔 식장의 분위기를
훔쳐보았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그렇지......."
내가 볼멘 소리를 터뜨리기도 전에 그가
나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회사로 빨리 돌아가셔야겠어요.
지배인이 발견해서 신고를 했습니다."
이제 모든 건 끝났다.
오후 여덟 시 정각, 판매장을 폭파시켜
버린다!
손 반장이 내민 메모지를 읽어본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이, 이게 어디서 나왔습니까?"
"사장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답니다.
내에 판매장 안에 감춰진 시한폭탄을
찾아내야 합니다."
손 반장과 내가 날을 듯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회사는 온통 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매장은 폐쇄되었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앰블런스와 페트롤카 그리고
소방차들이 큰 도로를 완전히 차지한 채
대기하고 있었고, 소방수들이 긴 호스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매장은 더욱 가관이었다.
정복경찰 수십 명과 폭약이란 붉은
글자가 쓰여진 완장을 두른 폭약반원 수십
명이 매장 안을 벌집 쑤시듯이 헤집으며
이잡듯 뒤지고 있었다.
너무 기가 막혀 나는 말이 잘 나오지
"아니...... 이건 다 뭡니까?"
"만약을 대비해섭니다. 시한폭탄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서요."
손 반장의 냉정한 판단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묵묵히
내 방으로 올라왔다. 우리 회사에서 그나마
앉아 쉴 수 있는 곳은 이 방뿐인 듯했다.
그러나 나는 앉지도 못하고 실내를
서성거렸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나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구원을
청하듯 손 반장을 바라보았다.
손 반장은 힐끗 손목시계를 살펴보더니
품 속에서 무전기를 찾아 쥐었다.
"반장이다! 남은 시간은 13분! 아직
진척이 없나? 폭약반! 응답하라!"
촉박합니다!"
......무전기 속에서 다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조건 찾아내!"
손 반장은 신경질적으로 내뱉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결국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의 표정에 나는 울화를 터뜨리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입니까? 경찰은
뭘하는 겁니까?"
"......."
"이런 사태가 생길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그놈이 요구하는 대로 돈을 줘버렸으면
깨끗하게 끝났을 것 아닙니까!"
"그건 악순환입니다."
"뭐요?"
"한번 재미본 놈이 그 한 번으로
"그렇다면 그놈을 체포해야 하잖소!
사람을 이렇게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게
경찰이 할 일이오?"
"우선 진정하세요."
나는 애꿎은 보조의자에다 화풀이를 해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남은 시각 7분!"
그는 냉정하게 무전기와 초읽기만
거듭했다. 그리고 분통이 터져서
씩씩거리는 내 모습이 안쓰러운 듯 그윽히
바라보았다.
"양 사장님, 어쨌든 최선을 다해
봅시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요? 이
지경까지 와서."
"양 사장님께서도 책임이 전혀 없는 건
"뭐요?"
"협조를 해주셨어야죠."
그는 마지막 한 가닥 남은 내 분통마저
터뜨려 버릴 모양이었다.
"범인은 양 사장님의 주변에 있습니다.
내부 인물이든 같은 업계의 라이벌이든
친구이든 어떤 원한이 있든 간에 주변의
누군가는 틀림없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수사를 하니까 아직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거요."
나는 조롱하듯 그를 쏘아보았다.
"남은 시간 3분!"
그는 내 말엔 대꾸도 없이 무전기에다
악을 쓰기 시작했다.
"2분 50초! 아직 소식이 없나?"
그러나 반응이 있을 리 없었다.
순간 귓가로 증폭되는 듯한 초침 소리를
들으며 견딜 수 없는 무서움이 나에게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2분!"
그 소리에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갑시다! 우리도 함께 찾읍시다."
손 반장이 무서운 눈길로 나를
잡아세웠다.
"안 됩니다! 밖에는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나가면
오히려 짐만 될 거요."
"1분 50초 전!"
나는 좌불안석이 되어 서성거렸다.
도무지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이 건물에선 그래도 이곳이 제일 안전할
겁니다. 그래서 사장님을 이쪽으로 모신
이곳에만 있으면......."
그의 태평스런 소리를 나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자칫 이 건물이 폭파라도
된다면, 그리고 생매장이 된다면 이제 막
꿈같은 미래가 펼쳐질 찰나에? 그건 안
된다. 나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쳤다.
"나갑시다! 이 건물 밖으로 나갑시다!"
그리고 그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거 왜 이래! 지금 방해하면 당신도
죽고 나도 죽어!"
뜻밖에도 그는 거센 완력으로 몸을
비틀었다. 나는 맥없이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51초 전!"
그는 냉정한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3초!"
피를 말리는 초읽기가 급박하게
계속되었다.
"32초! 31초! 30초 전! 전원 수색
중단하고 대피하라! 대피하라!"
악을 써대는 그의 고함을 귓등으로
흘리며 나는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집무책상으로
달려간 나는 의자를 밀어제끼고 그 아래에
감추어진 폭약상자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한달음에 창가로 달려가 그
폭약상자를 창밖으로 던져버릴 찰나였다.
"그대로 서!"
벽력 같은 소리가 나의 지각을
돌이켜세웠다.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면서 도
형사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폭약상자를 얼싸안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건 터지지 않으니 내려 놔!"
손 반장의 말투는 어느새 반말로
바뀌었다. 그는 빙글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이미 뇌관을 빼고 바꿔치기 해
두었으니까."
순간 나는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듯한
강한 충격을 느꼈다.
"그......그럼......지금까지......."
"물론 연극이었어. 우리가 그 폭탄을
찾아내봐야 당신이 숨긴 게 아니라고
발뺌을 하게 되면 증거 불충분으로
공소유지가 어려울 테니까. 그래서 당신의
술수에 속아넘어가는 척하면서 역습을 한
셈이지."
몸을 지탱할 기력마저 상실해 버린 나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말해 봐요...... 어떻게
알아냈는지......."
"당신은 완전범죄를 계획했겠지만
허점투성이였어. 당신이 피해자로 위장해
버린 술수에 한때 속아넘어갈 뻔했었지.
우린 당신이 처한 상황을 정밀하게
탐색하면서 비로소 당신에 대한 심증을
굳혔던 거요. 회사는 부실경영으로
사채투성이에다 빛좋은 개살구 꼴이고
결혼을 미끼로 기사회상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했는데, 엉뚱하게
당신이 심심풀이삼아 우연히 손대었던
여점원 최순영이 임신이라는 올가미를
당신에게 씌워왔던 거요. 그래서 당신은
끝에 최순영을 없애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다시 우리의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번
사건을 저질렀던 거요. 그러나 그게 당신의
마지막 실수였소! 당신은 당신 꾀에
넘어갔소. 이번 사건만 일으키지 않았다면
우리가 당신을 체포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할 수 없었으니까. 결국 내가 며칠 전
타자기와 과학수사 운운하며 내부소행으로
몰아붙였던 것은 결국 내가 당신한테 던진
미끼였소. 그런데 당신은 그걸 보기좋게
덥석 물었던 거요."
손 반장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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